[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국회의원 지역구를 검색하다 이상한 곳이 눈에 띄었다. 두 개의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은 후 다시 '갑'과 '을'로 나눈 지역구들이다. 부산 해운대구ㆍ기장군과 북구ㆍ강서구, 인천 서구ㆍ강화군이 그 대상이다. 국회의원의 역할이 지역 민의를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행정구역별로 한명씩 선출하면 간단한 일을 왜이리 복잡하게 만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행정구역을 합쳐 다시 '갑을'로 구분하는 선거구 역사는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획정)의 질긴 생명력을 대변한다. 사법기관의 철퇴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꼼수로 탄생한 선거구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20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단위 행정구역이 광역시로 편입된 게 그 출발점이다. 기장군이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것도 이 때다. 편입 당시 선거구 획정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견제장치가 변변찮은 탓이다. 인구 7만명 정도인 기장군의 선거구는 인근 해운대구로 편입됐다.
문제는 15대 총선을 불과 4개월 남짓 앞둔 같은 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면서 불거졌다. 헌재가 여야가 마련한 선거구 획정안이 표의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다시 선거구를 짜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는데, 해운대ㆍ기장 지역구가 전국적인 쟁점 지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해운대와 기장 선거구 인구는 36만여 명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헌재는 인구 상한과 하한의 편차가 4대1을 넘지 않도록 했다. 당시 인구가 가장 적은 전남 장흥의 6만1000여 명 보다 거의 6배나 많았다. 1인당 표의 가치로 환산하면 해운대ㆍ기장 유권자 표 가치는 장흥 유권자 표의 6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위헌을 벗어나려면 해운대 선거구를 두개로 쪼개야 한다. 기장까지 별도 선거구로 정하게 되면 선거구는 1개에서 3개로 늘어나게 된다. 선거구 한 곳을 조정하면 도미노처럼 다른 선거구까지 조정해야 한다. 여야는 결국 해운대ㆍ기장의 인구 상한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해운대 일부 동을 기장에 붙여 2개 선거구로 만드는 편법을 동원했다. '시군구 일부를 분할해 다른 지역구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당시 선거법도 외면했다. 이 때 탄생해 지금까지 이어진 지역구가 해운대ㆍ기장 외에 부산 북ㆍ강서, 인천 서ㆍ강화 등이다.
헌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꼼수로 선거구가 정해졌으니 그 이전 획정이 여야 이해 관계에 따라 좌우됐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야 모두 유리한 쪽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개 군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한 군이 같은 선거구로 엮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여야는 또다시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에 착수해야 한다. 지난해 헌재가 인구편차를 2대1로 조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획정 작업을 둘러싼 신경전이 뜨겁다. 인구 뿐 아니라 지역대표성까지 감안해야 하는 게 정치권으로선 부담이다.
게리맨더링은 총선을 앞두고 망령처럼 되살아난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인구와 지역성을 감안해 선거구를 조정할 지 벌써부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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