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음악 DJ 정규호,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다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말콤 글래드웰은 '1만시간의 법칙'을 설파하며 '그 분야 전문가가 되려면 1만시간을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이 법칙대로라면 40년 동안 DJ로 활동한 정규호(64ㆍ사진)씨는 전문가의 경지를 이미 넘어섰다. 그는 디지털 음악 일색인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LP판을 매만지며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는 음악해설가다.
1970년대 이종환, 김기덕, 서유석 등이 방송계 DJ 스타였다면 그는 음악다방의 스타였다. 연대 앞 독수리 다방, 신촌로터리 할렘, 이대 앞의 캠퍼스, 홍대 앞의 카타리나. 명륜동의 로코코 등이 그의 주 무대였다.
원래 미술학도였던 그는 청주고 1학년 시절, 1년 위 선배 집에 있는 전축으로 음악을 접했다. 고성능 전축으로 듣는 음악은 황홀했다. 음반 관련 서적을 구해 읽으며 이론 공부도 틈틈이 했다.
골방에 갇혀 음악에 심취했던 소년은 1970년 열아홉 나이에 감히 DJ로 데뷔한다. 1973년 제대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홍대 1호 DJ 이기도 하다. 스스로 '음악 따라 흘러간 인생'이라고 말할만큼 성남, 경주, 대구, 제주, 춘천 등 전국 각지에 있는 다방을 떠돌았다. 경주에서 음악감상실 '시향'을 차렸고 대구에 음악감상실 '무언가'를 열었다.
음악은 그를 충만하게 해줬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았다. "다른 아내 같았으면 도망갔을 거예요." 1981년 결혼한 아내는 제주에서 경주로,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마다 군소리 없이 LP판을 날랐다. 3000장이나 되는 음반을 옮기면서 허리도 여러 번 삐끗했다고.
고심 끝에 고른 음악이 인연도 만들어줬다. 경기 성남 '보고 싶다 친구야'에서 DJ로 활동할 때였다.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일행을 발견하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을 틀었다. 한참 있다가 외국인이 성큼 다가와 "러시아 사람보다 더 러시아음악을 잘 안다. 이렇게 좋은 러시아음악을 소개해줘서 고맙다"면서 명함을 건넸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친 대통령이 천거한 알렉산더 티모닌 러시아 부대사였다. 정씨의 음악 선곡에 반한 티모닌 대사는 그날 일정도 취소하고 그와 와인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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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위례신도시 개발로 9년 동안 일한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그는 또다시 떠돌이 DJ가 됐다. 다행히 지난해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대장장이 파브르'에서 그에게 부스를 마련해줬다. 파스타를 먹으러 온 사람들은 부스를 보고 한 번 놀라고 정씨의 선곡에 또 한 번 놀란다. "대화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나이대와 취향을 대충 짐작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선곡한 곡을 들려주면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요.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거든요."
본인을 '영원한 DJ'로 소개하는 정씨의 바람은 하나. 각박한 세상에 음악으로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이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DJ 로빈 윌리엄스가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게 노래 한 곡으로 위로를 건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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