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2015년 세계 경제지도 ② 유럽·일본 동병상련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 경제는 닮은 점이 많다. 좋은 점이 아니라 나쁜 점에서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식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망령이 유로존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디플레 극복 차원에서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하지만 되레 경기후퇴에 빠졌다. 온갖 방법으로도 유로존 살리기에 실패한 유럽중앙은행(ECB)은 조만간 양적완화를 시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효과를 두고 말들이 많다. 올해 유로존과 일본 경제가 직면한 최대 과제는 첫째도 물가, 둘째도 물가다.
미국 온라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유럽과 일본만 놓고 보면 세계 경제가 1990년대 상황을 재현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일본은 공식적인 디플레에 빠졌다.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은 '치유할 수 없는 병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다녔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일 사상 최저치로 내려가고 있는 일본과 유럽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0.27%까지 하락했다. 독일ㆍ프랑스ㆍ핀란드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앞 다퉈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독일 5년물을 포함해 일부 단기물 국채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비정상적인 국채 금리는 경기부양 차원에서 금리인상을 억제하고 있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부작용이다. 양적완화 기대감으로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에도 국채 매수를 이어가고 있다.
◆기로에 선 유로존= 올해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유럽만큼 경제전망이 좋지 않은 곳도 없다. 유로존은 지난해 3ㆍ4분기에 전분기 대비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마킷은 제조업 지표 등으로 유로존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1%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유로존은 금융위기 당시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ㆍ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주요 기관들은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춰 잡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이 기껏해야 1% 안팎일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률보다 더 큰 문제는 물가다. 유로존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시장의 예상치(-0.1%)보다 마이너스 폭(-0.2%)도 컸다.
마음이 급해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연초부터 양적완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ECB가 5000억유로(약 644조원)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양적완화가 유로존을 살려낼 구세주는 될 수 없다는 반론이 거세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에서 성공한 양적완화가 유럽에서도 성공하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타임스는 "유럽의 공공지출과 투자가 미국보다 현저히 낮은 반면 기업의 금융권 의존도는 더 높다"면서 "중앙은행에서 풀어 놓은 돈 보따리가 자산가격을 부풀려 고위층만 혜택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악재도 극복해야 한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구제금융 졸업의 꿈에 부풀었던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라는 악몽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구제금융 조기 졸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리스 정치권은 분열됐다. 이는 대통령 선출 실패와 조기 총선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하는 제1야당인 시리자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그리스가 이대로 유로존을 떠나면 파장은 그리스 너머 유럽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유럽 경제의 맏형 독일에서 부진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다. 최근 발표된 독일의 지난해 11월 수출은 전월 대비 2.1% 줄면서 예상보다 감소폭이 컸다. 이로써 독일의 수출은 2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다.
독일의 산업생산 역시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유가 하락과 유로 약세가 독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유로존 경기회복을 위해 독일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은 최근 "독일이 유로존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면서 "유럽의 경기회복에 수요 확대가 필수적인데 여기서 독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추가부양 나서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증시가 뛰고 엔화 값은 내렸다. 그러나 정작 성장률에서 반등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로 수정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5년만에 처음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게 된다.
일본 정부는 올해도 물가와 전쟁을 이어갈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2013년 4월 양적완화에서 '2년 내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내걸었다. 목표 달성 시한이 2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목표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소비세 인상 효과를 제외한 지난해 11월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0.7%로 1년만에 가장 낮았다.
일본은행은 물가가 지지부진하자 목표 달성 시기를 미루거나 물가 전망치를 낮춰 잡는 방식으로 면피해왔다. 일본은 2015회계연도까지 물가상승률을 1.7%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014회계연도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1.2%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유가 하락으로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고 보는 일본 정부의 믿음과 달리 오히려 물가 하방 압력만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일본에 유가 급락세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지난 수십년 동안 디플레와 싸워왔다. 저널은 일본 경제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동반 하락의 위험이 훨씬 더 크다고 분석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최악의 경우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올해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깜짝' 양적완화를 단행하면서 목표 달성 시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일본은행이 물가 목표치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양적완화에 나서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였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015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오는 4월께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일본 NLI 리서치의 하지 고이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집권의 발판이 마련된 일본 정부는 어떤 식으로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을 해결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면서 "아베 정부는 미약한 구조개혁을 가속화해 일본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해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