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당신이 먹는 빵이 당신을 말해준다
빵을 통해 들여다본 인류문화사, 신간 '빵의 지구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한국인의 주식이 밥이라면, 서양인의 주식은 단연코 '빵'이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절반 이상의 지역에서 주식으로 먹는 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다. 빵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만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구한 세월을 인류와 함께 해온 빵은 음식 이전에 문화이며 역사이다. 신간 '빵의 지구사'는 "우리가 먹는 모든 빵에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독자들에게 환기시킨다.
누가 처음 빵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라크, 시리아, 소아시아의 일부와 이집트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 문명인 우루크 문명이 탄생했고, 그 바탕에는 빵이 있었다고 추론할 뿐이다. 기원전 3000년경 이라크에서 발견된 한 설형(쐐기)문자에서도 빵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 후기에는 빵을 만드는 방을 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대인들이 수렵과 채집 생활을 포기하고 농경과 목축 생활을 하게 되면서 빵은 점차 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이 과정에서의 재밌는 해석도 눈에 띈다.
"유대교와 기독교 탄생 신화에서 아담과 이브는 채집을 중심으로 한 이상세계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빵(탄생신화의 주식)을 얻기 위해 항상 심한 형벌처럼 느껴지는 고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으로 가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은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해야 빵을 먹을 수 있는 벌을 받은 것이다." 자급자족의 생활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은 곧 고된 농사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었다. 이들 농민들에게 빵은 일용할 식량이며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18세기 말 장 자크 루소는 이 같은 농경도입으로 인해 노예 제도가 생겨났다고 주장했으니, 빵 한 조각의 탄생이 안겨다준 파장은 이토록 강렬하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은 빵에도 적용된다. 예부터 어떤 빵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드러나게 됐다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도대체 귀족층이나 부유층이 먹는 빵은 어떻게 달랐을까. 19세기 제분이 산업화되기 전까지는 '흰 빵'이 아주 비싼 음식이었다고 한다. 하얀 밀가루를 충분히 생산하기 어려웠던 시기니 만큼, 부유층들은 더 하얗고, 더 부드러운 빵을 통해 세력을 과시했다. 1630년 작품인 뤼뱅 보쟁의 '체스판이 있는 정물'에는 그 시대의 사치품과 함께 한 눈에 봐도 하얗고 폭신폭신한 빵이 놓여있다. 반면 루이 르냉의 1642년작 '행복한 가정'에는 가난한 소작농들이 커다란 호밀빵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아있다. 갈색의 투박한 빵은 가난한 자들의 빵, 희고 부드러운 빵은 부자들의 빵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때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 현재의 영국이나 미국의 부유층 식탁에는 껍질이 도톰한 '팽 드 캉파뉴'(통밀가루나 호밀가루로 만드는 프랑스 전통 시골빵)가 더 어울릴 것이다. 방부제나 화학재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로만 만든 수제 빵이 부유층이 선호하는 빵이 됐다. 반면 대량생산된 하얀 밀가루 식빵은 빈자의 식탁을 채운다. "왕이 먹는 밀빵을 먹고 싶어하는 모두의 꿈이 천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하고 서글픈 마음을 거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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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나라의 빵 조리법과 문화를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롭지만, 번역본에만 수록돼있는 '한국 빵의 역사'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이 챕터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건너온 '서양떡'이 어떻게 한반도에 정착하게 됐는지를 짚어준다. 이스트를 구하기 어려워 쌀누룩에서 얻은 효모로 반죽을 부풀리고, 속에는 팥소를 넣은 '단팥빵'은 식민지 조선에서 별미로 큰 인기를 얻었고, 운동회가 열리면 다들 이 빵을 먹었다는 신문 기사도 전해진다. 해방 이후 공장제 빵의 대량생산이 빵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지금은 일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의 독식이 사회문제로 불거질 정도가 됐다.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서양인의 주식 '빵'은 이제 우리 생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옮김 /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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