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6일. 수학여행을 떠난 꿈많던 250명의 학생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허망하게' 침몰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모든 분야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후 선박이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오고, 불법 개조된 선박은 과적이 용인됐다.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이들에게서 직업윤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머전시(비상)' 상황에 대한 정부 당국의 통제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진 채 '먹통'이었다.
8월 초에는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병이던 윤모 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했다. 윤 일병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구타에 시달렸다. 신성한 국방의무를 위해 떠났던 젊은이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위(상부)'에서 알지 못하는 '내무반 무정부상태'에 대한 국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국방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송파 가락동에서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어머니는 실직상태였고, 큰 딸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두 딸아이를 품에 앉고 세상을 떠나면서 집세와 공과금으로 70만원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정말 죄송합니다"였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가. 정말로 죄송하고 미안해 해야 할 사람은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그리스어에 '아포리아'(Aporia)'라는 말이 있다. 배가 좌초돼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일컫는다. '길(방편)'이 더 이상 없다는 최악의 상황이다. 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런 상황은 아닐까. 경제상황이 나쁘지 않다보니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경제가 대한민국의 '민낯'을 가려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감춰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대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 사람들은 아포리아를 만났을 때 이렇게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 손가락질 하는 대신 그 손가락을 가장 먼저 자신에게 돌렸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다는 얘기다. 또 노를 더 빨리 젓기 보다는 잠깐 노를 내려놓고 옆사람과 지혜를 모았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월 '동장군'의 기세가 거세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을 뒤덮은 아포리아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내년 을미년에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줄기를 기대한다.
@include $docRoot.'/uhtml/article_relate.php';?>
이영규 사회문화부 지자체팀 부장 fortune@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