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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33)]愛老(애로) 비디오, 39금(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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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탓에 식은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죽어도 좋아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오늘 이야기는 39금(禁)이다. '애들은 가라' 했을 때의 애들은 코흘리개였다. 그러다 19금이 등장했다. 100세 시대에는 장년들만의 이야기도 필요하다. 19금이 더 야하다. 39금은 '마른 자두(푸룬)'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드디어 봤다. 아니 보인다. 그녀가 입은 속옷이. 하얀 피부위에 나풀거리는 붉은 꽃잎. 검정과 구리빛 사이 어딘가에 있는 피부. 탄탄한 몸을 살짝 가린 나비와 꽃들. 수박덩어리 같은 구릉과 계곡을 감싸 도는 동양적 문양.
'살롱 인터내셔날 드라 란제리'. 밤늦은 시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란제리쇼를 본다. 신기하다. 그녀들이 입은 란제리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게 몇 년 만인가.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한 외국잡지 플레이보이는 충격이었다. 비키니만 걸친 외국 여성들. 느끼는 충격은 나체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중파를 통해 방송된 속옷 광고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랑의 비너스'는 아직도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 한때 홈쇼핑을 풍미했던 외국모델을 앞세운 란제리 광고까지.

족히 30년은 넘은 듯하다. 속옷 광고에서 속옷을 보지 못했었다. 모델의 육체에 집중했다. 육감적인 여자에게서 속옷을 구분해 따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드디어 생겼다. 란제리의 아름다움과 모델의 섹시함을 구분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속옷이 발전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 마음이 변한 것인지, 육체 때문인지 궁금해진다. '힘이 빠졌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섹시한 여성이 반쯤 벗은 모습을 보면 저절로 불타오르던 정염(情炎)의 에너지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강한 불길로 란제리를 다 태웠던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갔나. 나이 탓인가 보다.

"하하하, 등산과 꺾기야." 상가에서 만난 대선배님이 떠오른다. 무척 건강하시다. 비법을 여쭸더니 하시는 말씀이다. "등산은 알겠는데 꺾기는 뭐죠?" 소주 한 잔을 꺾으시며 "이거"라고 하신다. 등산은 부부관계란다. 반전이다. 일흔이 넘으셨다. 20여년 전에는 봄이 시작하는 입춘부터 겨울의 시작인 입동까지는 부부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하던 분이다. 더울 때 힘든 일은 아랫것들을 시켜야 한다고 농을 하시던 분이다. 나이를 드시더니 지위고하와 때를 가리지 않으시는 듯하다. 옆에서 부부동반으로 오신 다른 선배님이 크게 웃으신다. 당연하다는 웃음이다. 더 건강해 보이신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실제 부부 사이인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다. 일흔이 넘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당사자들이 출연해 섹스를 한다. 죽어도 좋을 정도로 좋단다. 2002년 영화가 나왔을 때는 충격이었다. 지금은 노인의 섹스는 당연한 일이다. 란제리쇼를 보고도 감흥이 줄어든 이유가 나이 탓만은 아니다.

"형은 권태로운 잠자리에서 태어났고 나는 열정의 결실로 태어난 사람이야."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구절이다. 왕위를 노리는 사생아 동생이 자신이 왕이 돼야 하는 이유를 독백으로 소리친다. 중학교 때 읽은 헨리2세로 기억한다.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고 이 구절만 떠오른다. 중세의 성, 어느 외딴 방에서 외치는 모습이 생생하다. 왜 그럴까. 불륜은 강렬하다. "너의 열정을 존중해, 너의 본능에 충실해."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유혹이 피어난다. 위험이 따른다.

"그가 아닌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 리처드 기어와 다이앤 레인이 주연한 '언페이스풀(Unfaithful)'은 불륜의 비극적 종말을 보여준다. 결혼 10년 차의 행복한 주부인 다이앤 레인은 우연히 만난 프랑스 청년 올리비에 마르티네즈와의 섹스에 탐닉한다. 망설이던 그녀는 "결과는 하고 안 하고의 차이뿐"이라는 말에 힘입어 한다. 그 결과는 한 구의 주검과 파탄난 가정이다. 리처드 기어는 아내의 내연남을 죽였다. 실업자인 최민식은 '해피앤드'에서 바람난 아내 전도연을 죽인다. 결혼 전 애인(주진모)과 바람피는 것은 참았다. 배고파 우는 아이의 우유통에서 개미를 발견하고는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바람으로 가정이 파탄난다. 가정은 집과 가족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본능 속에 가정을 파괴할 힘이 웅크리고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여자의 바람기인 것은 남자가 아직도 더 큰 권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도덕 교과서, 사회제도, 영화 등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지키라고 한다. 그 사람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선을 넘는다. 내 안에 내 것 아닌 내가 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이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그런데 양기만 입으로 올라왔을 뿐이다. 부와 권력이 있으면 딴짓하면서 가정을 유지했다. 왕부터 지금의 부유층까지.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바람 피우며 가정을 지키는 것은 권력과 돈을 본능과 욕정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자에게 가능하다. 우리들은 들키면 끝이다. 죽이지 않아도 반은 죽는다. 다이앤 레인과 전도현도 숨기려 했다. 실패했다.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설렘과 떨림이 그립기 때문이다. 다시 맛보고 싶다. 그런데 그 설렘과 떨림이 어떻게 됐더라. 란제리쇼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안자고 뭐해요." "이상한거 보는구나." 아내가 부엌으로 가며 한 마디 한다. 낡은 잠옷이 눈에 띈다. "아니"하며 이리저리 채널을 바꾼다. 잠옷 한 벌 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MBC 주말 특별기획 '전설의 마녀'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오현경은 자신의 브래지어를 뺏어가려는 김수미에게 "쭈글쭈글 말린 자두랑 속이 꽉 찬 수박이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라고 소리친다.

뭘 모르는 말이다. 70대의 선배님들과 '죽어도 좋아'의 박 할아버지는 수박보다 말린 자두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크고 빵빵하고 육감적인 것을 쫓는다면, 나이가 들면 익숙하고 편안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39금 마른 자두 이야기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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