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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삼지미당, 디자이너 이야기(208)

최종수정 2014.11.07 06:55 기사입력 2014.11.0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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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디자이너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문 위에 편액 하나가 걸려있는데, 삼지미당三知美堂이라 씌어있다. 그에게 그 뜻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디자인은 세 가지 지혜를 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지(第一知)는 형지(形知)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태를 이해하는 일이죠. 우리는 대개 형상을 형상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과는 이렇게 생겼다. 호랑이는 이렇게 생겼다. 그런 견해 말입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 관념 속에 들어있는 형상과 현실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형상을 구분하고 그것을 미학에 활용합니다. 리얼리티와 상상을 넘나드는 형상의 비밀을 지혜롭게 읽어내는 것이, 제가 고민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입니다.

제2지는 언지(言知)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언어를 이해하는 것. 사람들은 디자인 작업에 언어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되묻습니다. 하지만 언어야 말로 디자인이 품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언어는 인간이 소통에 활용하는 강력하고 기초적인 툴입니다. 디자인은 바로 시각 언어이기도 하지만, 언어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이란 말 속에 원래 계획이나 의도라는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계획이나 의도는 사실 언어라는 형태로 집약되어 표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이너가 언어에 예민하고 정밀할 때, 디자인은 지적인 함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3지는 인지(人知)라고 봅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인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의 습관과 욕망과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죠. 결국 디자인이 존재하는 곳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인간(人間)입니다. 디자인을 구매하고 활용하고 소비하는 대상을 잘 읽어내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 모두에 개입하는 행위입니다. 디자인이 일의적(一義的)인 완성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파격을 지향하는 것은, 변화하는 인간의 양상에 기인하는 것이지요. 디자인은 결국 인간입니다. 인간의 원형과 일탈이 빚어내는 모든 긴장이 바로 디자인의 역동성이 아닐까 합니다.

삼지미당은 이 세 가지 지혜와 통찰이 어우러지는, 미학적인 세계를 탐색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디자인이 예술이면서 삶의 본질인 까닭은 바로 저 삼지에 있다는 생각. 그것을 잊지 않으려 당호를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사실은 디자인의 '쌈지'라는 뜻이기도 하죠. 하하하.
가만히 마음에 받아적었다. 당호 현판 하나에 문외한이 깔끔한 디자인 개론 수업을 들은 기분이었다.

ps : 디자인에 관한 의견을 나누다가, 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썼던 글입니다. 대개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이는, 소통의 콘텐츠가 디자인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전통적인 디자인 미학에서는 형상(빛과 컬러를 포함)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이런 논의는 추사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그림(회사)이란 것이 과연 형태를 그리는 것이냐 뜻을 그리는 것이냐의 문제였죠. 추사는 사의(寫意, 뜻을 그림)에 크게 기울어진 의견을 냈고,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에 따랐습니다. 그 이전에 겸재와 같은 이가 주창한 진경산수는, 도식적인 형태주의에 반발해 실경을 반영하는 것의 중요성을 제기했고, 그러다가 실경을 표현하는데 들어가는 정신주의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추사가 나타나 저 형태 모사에 대한 비판을 극단으로 밀고가면서, 형사(形似, 형태를 비슷하게 베끼는 작업)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삼지미당에 담긴 세 가지는 그런 역사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형지는 바로, 디자인의 근간이며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미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재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언지는 바로 뜻하고자 하는 바를 깊이 물고들어 형상 이상의 무엇인가를 표현해내야 한다고 보는 추사정신을 담았다 할 수 있습니다. 언(言)은 말하고자 하는 것, 즉 콘텐츠에 대한 소통방식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인지는 타겟이라고 부르는 것, 자본주의 표현으로 하자면 '디자인 소비자'의 입장과 인식과 감관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일 것입니다. 아이쿠, 댓글이 장난 아니게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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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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