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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바람에 관하여(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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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 해와 달, 흙과 빛, 나와 너. 이렇게 한 글자 명사들을 다 붙이고 난 다음에, 인간은 '바람'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글자' 호명시대를 지나야 나타나는 바람은 꽤 복잡하고 난해한 감각과 인식의 결과인 모양이다. 바람은 내 피부나 눈동자에 느껴지는 감각이고, 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을 날리는 그 움직임의 배후이고, 구름이 내달리고 먼지가 일어나고 흩어지는 그것의 동력이다. 더운 날 부는 바람은 땀을 식히고 추운 날 바람은 몸을 얼린다. 미친 태풍은 마을을 날리고 돌개바람은 허공으로 치솟는다. 바람의 문제를 이해할 때 서경덕은 이렇게 물었다. 부채의 앞에 바람의 원인이 있는가, 부채가 지나간 뒤에 바람의 결과가 있는가. 바람의 기운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은 인간의 환경을 이루는 자연현상이지만, 그것은 내면화되어 인간의 삶 전부를 이룬다. 풍류는 바람이 부는 것과 물이 흐르는 것을 내재화한 은유이다. 바람났다 할 때의 바람은 안정되어 있어야 할 감정이 돋아나 삶의 방향을 만들어내는 문제의 총칭이다. 바람들었다 할 때의 바람은 대개 소용없는 헛바람으로 스스로가 감내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부풀려 꿈꾸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역풍이 부는 것은 곤경을 의미하며 순풍이 부는 것은 일이 잘 풀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몸에 바람이 든 것은 중풍(中風)이고 말이 바람에 날리는 것이 풍문이요 풍설(風說)이다. 헛된 말은 허풍이요 바람으로 하늘을 나는 배가 바로 풍선이다. 유행과 분위기와 뉘앙스도 풍(風)이다. 유럽풍이나 니나노풍이나 집시풍은 모두 느낌이 자아내는 바람이다. 인생에는 가끔 폭풍도 생겨나고 돌풍도 불어오며 폭풍같은 시련을 맞을 때도 있다.
세상에 불어오는 바람들은 모두 삶을 환기시키고 살아야할 방법에 대해 공부하게 하는 스승들이다. 바람만 잘 이해해도 곤경과 슬픔과 고통의 많은 것들이 풀린다. 바람을 타는 일, 바람을 재우는 일, 바람을 잘 맞는 일.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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