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에 서면 누구보다 빠르고 멀리 본다…휠체어 농구선수 오동석
[수원=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이 눈앞인데 쉴 틈이 어디 있겠어요."
휠체어농구 대표선수 오동석(27)은 추석을 잊은 지 오래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정립회관 종합체육관 코트에서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무게가 11㎏이나 되는 휠체어를 끌고 선수들 사이를 비집고 파고든다. 이어진 골밑 슛은 백발백중. 3점슛도 거의 대부분 림을 깨끗이 통과한다. "집중력이 대단하다. 운동능력, 특히 슛 감각을 타고났다." 한사현(47) 대표팀 감독이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오동석은 별 반응이 없다. 평소에도 무뚝뚝하다. "아직 멀었어요. 경기 운영을 더 익혀야 해요."
오동석은 농구로 세상을 보고 배운다. 그는 아산 동방초등학교에 다니던 열두 살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호기심에 올라탄 오토바이를 몰다 1톤 트럭과 충돌했다. 의식은 있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만 해도 이상이 없다고 했죠. 그런데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알고 보니 척추가 부러졌더라고요." 서울로 올라가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삶. 오동석은 세상과 소통을 단절했다. 학업까지 관뒀다. 천안중을 졸업하자마자 집에 틀러박혀 나가지 않았다. "등하교 때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기가 미안하더라고요. 고생하시는 걸 보기가 힘들었어요. 일반 친구들이랑 어울려 지내는 데 한계도 있었고요." 누구보다 활발했던 그는 조금씩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겨우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가도 얼마 가지 못해 돌아왔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농구는 2년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을 외면하고 지낸 오동석의 삶을 바꿨다. 2003년 아산시장애인복지관에 나갔다가 알게 된 휠체어농구는 그에게 삶의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해보니까 정말 재밌는 거예요.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을 해서 즐거웠어요." 또 다른 집이 된 코트에서 그는 매일같이 훈련에 매달렸다. 어린 시절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터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입문 5년 만에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고, 한 감독의 추천으로 2010년 3월 국내 유일의 실업팀 서울시청의 창단 멤버가 됐다. 한 감독은 "슛 감각도 훌륭했지만 휠체어를 다루는 기술이 남달랐다. 조금만 다듬으면 세계 최고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오동석은 해외 진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겨우 적응한 사회를 떠나기가 두렵다고 한다. 비행공포증(aerophobia)도 문제다. "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리면 무서워요. 해외에 진출하면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할 텐데." 그래도 마음은 '도전'으로 많이 기울었다. 그는 처음 코트를 접했을 때를 자주 떠올린다.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더라고요. 비슷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와 무엇이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행복 전도사를 꿈꾼다. 농구로 되찾은 웃음을 이제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농구공을 튀긴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어요. 그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꼭 우승할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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