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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25)]남자답지 않으리

최종수정 2014.08.20 11:01 기사입력 2014.08.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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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힘, 호방함이 의무는 아니잖아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남자 맞아?" 북한산 사모바위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가던 길이다. 대학 친구 셋이서 등산을 하다 씩씩한 아줌마 두명과 말을 섞었다. 문수봉을 넘어 가는 길과 옆으로 돌아가는 두 갈래 길의 분기점. 우리는 옆길로 가는데 아줌마들이 함께 넘어 가잔다. 문수봉을 넘어가는 길은 바위절벽에 박힌 쇠기둥과 쇠줄을 잡고 올라가는 길이다. 쇠줄을 꼭 잡고 오르면 위험하지 않지만 가파른 경사로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 때 들은 말이 "남자 맞아"다. 한 마디 더 들었다. 뭐가 달렸느니, 없느니 그런 얘기다.


 참 묘하다. 왜 그럴까? 이 여자들은 어쩌다 무례할 정도로 씩씩해졌을까? 여자들 나이 먹으면 다 그런가. 그런데 화장은 또 곱게 했어. 도대체 정체가 뭐야. 니들이 예뻐봐라, 오지 말래도 따라가지. 뒷담화를 하면서 옆길로 간다. 그래도 '쪽팔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남자답지 못하다'와 '쫀쫀하다'는 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남자의 성적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남자다운 사람한테 말하면 기분 나빠하고, 남자답지 못한 이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분노한다.


 우리 또래는 남자다움을 키우도록 교육받았다. 남자다움이 뭔지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겉으로는 가부장적 권위와 카리스마를 의미한다. 안으로는 용기, 정의, 배려, 힘. 호방함, 공동체, 가족,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는 능력. 이런 덕목들이 남자다움속에 녹아있는 듯하다. '남자 맞아'는 이런 남성의 덕목이 부족하니 남성의 상징인 거시기도 아니 달렸을 거라는 조롱이다. 용기, 힘, 호방함이 없단 얘기다.


 요즘 젊은이들은 좀 다르다. 아니 내 아들 둘은 다르다. 휴가 나온 큰 아들이 엄마와 삼청동에서 데이트를 했다. 결혼관, 여성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3명 정도 낳겠다고 했다. 그런데 맞벌이 배우자를 찾는 쪽으로 전향했다. 음식점과 카페를 가득 매운 아줌마들을 보면서 생각이 변했단다. 남자들이 벌어단 준 돈으로 여자들이 한가로이 노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아내와 아들이 이 문제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갑론을박한다. 둘째는 형의 주장에 동조한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보는 젊은 남성들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어떤 사회나 문화든 성에 대한 고정관념인 성-역할 고정관념(sex-role stereotype)을 가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성별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기대한다. 이러한 성역할에 대한 완고한 기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남자다움'보다는 '성평등'을 선호한다.

 어쩌면 일본의 초식남과 비슷하다. 초식남은 초식동물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다. 여성스런 감각과 섬세한 성격을 지닌 남자를 말한다. 가부장적이고 강한 카리스마의 '육식계남자'와는 다르다. 이성보다는 자신의 일이나 관심분야, 취미활동 등에 몰두한다. 연애, 성, 결혼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반면 옷과 화장품 등 패션에 여성 못지 않은 관심을 둔다.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만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가사도 분담한다.


 올해초 회사게시판에 후배기자가 품절녀가 된다는 청첩장이 올라왔다. "다 필요없으니 ㅇㅇ씨 머리에 '리본'만 달고 오라"고 했다는 신랑의 어록이 소개됐다. 씩씩하고 멋진 신랑이다. 남자답다는 칭찬을 들을 만하다. 말만이라도 좋다. 심리적으로 기댈 만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 듯하다. '아들이 이런 남성다운 청년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성역할에 대한 관념이 혼돈기에 들어서 있다. 기존의 성역할이 온존한 가운데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져가고 있다. 때문에 적응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결혼하면 직장과 가사를 병행해야 한다.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쟁에 내몰리고 높은 직위와 많은 급여를 받는 여성상사도 많아지고 있다. 권위는 무너져 내린 지 오래다. 그런데 의무를 걸머지고 뭔지 모를 남성상을 지켜내야 한다. 단순했던 옛날이 그립다.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나눠졌으니 서로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면 됐다. 그런데 그 때는 돌아오지 않는다.


 남자다움을 지키기가 버거운가. 프랑스 철학자 뱅상 세스페데스는 저서 '남자답지 않을 권리'에서 "당연시됐던 관습, 제도,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벗겨내면 의외로 진실은 간단하다"며 "남자들은 남자답지 않을 권리가 있고, 여자들은 여자답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철학적 논리는 별개로 치고 '남자답지 않을 권리'는 중년남성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힘들다면 무리하게 남자다우려 하지 마라. 그냥 남자면 충분하다. 용기, 정의, 배려, 힘. 호방함, 공동체, 가족, 약자를 보호하는 능력은 꼭 남성만의 자질일 이유는 없다. 또 다 갖춰야 사는 것도 아니다.

 문수봉의 육식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그런 남자 아냐." 남자는 이래야 된다는 틀에 갇힌 고루한 남자, 남자다움이란 감옥에 갇혀 끙끙대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구. 문수봉은 문수보살을 딴 이름이다. 석가모니의 왼편에 있는 문수보살은 '완전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녀들을 쫓아가지 않은 것은 '남자답지 않을 권리'를 선택한 지혜였다. 아들에게 배웠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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