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닷새의 한국일정 시작됐다…갈등사연 들어주실 '귀'가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이윤주 기자]한반도는 '믿음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 사회지도자 누구도 믿음의 중심축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월호의 아픔은 충격과 절망의 현실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군내 사망 사건 등 아픔을 가중시키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게 패어 있다. 힘의 논리가 상식을 억누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체념과 냉소의 시선으로 힘겨운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런 한반도에 희망의 씨앗이 피어나고 있다. 냉소의 짙은 그늘을 걷어낼 '희망의 기운'이 한반도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을 밟았다.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기쁨이자 축복"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번 방한은 특정 종교지도자의 방문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교황방한] 희망을 주오, 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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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떠나 그가 가진 낮은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과 타인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을 우리 사회에 가득 퍼뜨려 주기를 바랍니다." "상처 받은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상에는 교황의 방한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교황은 지난 3월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빕니다. 평화가 회복되고 새로운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빕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방한에서도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에 대한 기대감은 남북분단 상황 등 거창한 주제에 대한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낮은 곳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아끼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에 대한 남다른 기대감도 반영돼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나 군대 폭력 문제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들의 경우 대체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로해온 프란치스코 행보가 기대감의 배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이 초대됐다. 갈등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사회의 관심사에서 한발 비켜나 사실상 방치돼 있는 이들을 향해 관심의 손길을 뻗은 셈이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이강원 소장은 "교황의 이번 방문을 통해 우리사회에 해결되지 않은 사안인 제주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자, 밀양송전탑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교황에 대한 기대감은 거꾸로 우리사회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황에 대한 기대감은 명과 암을 담고 있다. 특히 믿음 상실의 사회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정부의 대처는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줬다.


정부 여당은 물론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 역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민 입장에서는 정치나 종교, 사회 지도자들이 정말로 힘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 깊은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5일 오전 11시 광화문 주변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장애인·빈민·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5일 오전 11시 광화문 주변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장애인·빈민·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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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희망나눔' 김은주 나눔팀장은 "사회의 어둡고 힘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황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면서 "분명히 위로는 되겠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질 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에도 존경받는 이들은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세대와 이념을 초월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故 문익환 목사나 故 김수환 추기경 이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지도자도 보이지 않고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자도 마찬가지"라며 "교황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점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가난한 서민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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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해주는 '지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신뢰'를 지닌 지도자에 대한 갈망도 교황의 방문에 대한 기대 섞인 시선의 배경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에 공신력 있는 '어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반증"이라며 "단순히 교황의 상징성을 넘어, 말이 아닌 본인의 '삶'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온 프란치스코에 대한 감동과 기대감이 이러한 환영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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