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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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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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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를 암담하게 하는 몇몇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인사청문회, 관심사병의 난사사건, 하나 더 꼽자면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졸전이 그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이제껏 무엇을 했는가, 혹 대의민주주의를 탓하자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 일련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정체된 현재에 대한, 세월의 빚을 받으려는 과거의 습격이라는 점이다. 사회구조적으로든 개인사로든 집단 내부관계에서든 시시각각 과거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해서 현재를 좀먹지 말아야 한다.

오대양의 떼죽음 사건이 일어나고 30년 가까이 묵는 동안 사이비 종교집단이 다시 섰다. 안일과 야합에 기승해 인간보다 이윤을 앞세우던 이 시대의 자화상, 세월호는 침몰했다. 가불해서 써버린 세월의 빚이다. 군사정권은 우리를 극장에서 일으켜 세워 애국가를 듣게 했지만 이때 화면에 나오는 거함의 진수식을 바라보면서 일말의 감격을 느꼈다면, 제너럴셔먼호의 잔해를 끌어다가 군함을 만들려 했으나 좌절했던 대원군의 DNA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야 서양의 기계문명을 배우긴 했으되 이를 관리하고 통제할 능력은 없음이 드러났으니 어쩌랴.
인사청문회라는 도마 위에서는 노블레스만 밝히고 오블리주는 외면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가증스러운 행태가 발가벗겨진다. 과거는 같이 즐겼으되 현재는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공동체의 일을 하겠다고 나설 때 당연히 넘어야 하는, 필부도 가볍게 넘는 문지방에, 정산하지 못해 덜렁거리던 과거가 걸려 고꾸라진다. 사임을 표한 총리의 유임이 묘수이긴 하나 묘수 세 번 두면 그 바둑은 진다. 이러한 세력이 지배하는 체제가 과연 도덕과 지성의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 회의가 들 지경이다.

관심사병의 문제는 경과가 다 밝혀지지 않았으니 그 행위자의 내면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증폭돼온 왕따라는 피해의식에 그 자신 역시 파탄이 났다는 점과 사병을 사람이 아닌 자원으로 수단으로 보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온 병영문화가 책임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점만 지적하겠다. 월드컵 대표팀의 경기는 축구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놓았고 히딩크 이후 무엇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축구야 굳이 보려면 상대편을 응원해도 그만이니 논외다.

지금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과 이에 반응하는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 그리고 이들로 이뤄지는 관계는 역사성을 갖는 무수한 요소들이 동시에 같이 나타나면서 모순되고 길항하는 (불)균형상태다. 조수간만에 따라 맹골수도에 이리저리 물줄기가 흐르면서 크고 작은 와류와 역류가 생기는 모양새다. 이것이, 나치에 환호하던 소시민을 사회경제사적으로 분석하면서 블로흐가 사용한 '이시적인 것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en)'이라고 하는-영어를 거치면서 흔히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 오역되는-개념의 현대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생산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정체된 인간사회의 가치관으로 인한 불균형, 구시대적 행태와 현재의 시대정신의 충돌과 같은 거창한 국면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개인사와 불안정한 내면에서도 역사성을 갖는 이시적인 요소들이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적ㆍ인식적 틀에서 벗어나 역학적ㆍ의지적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한다. 현재가 정체되면, 미래의 지향점을 잃어버리면, 과거가 고개를 든다. 현재가 과거에 발목을 잡혀 자빠지지 않으려면 먼저 현재가 과거에 대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현재의 필요에 의해 과거가 정산돼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눈앞에 MB 청산이 아른거린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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