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보드(전광판)에 영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60, 1970년대 고교·대학·실업 등 아마추어 야구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흔히 했던 말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스코어보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숫자는 0이었다. 1-0, 2-1, 2-0 등 축구와 같은 스코어가 심심찮게 나왔다. 한국이 처음으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1963년의 일이다. 그해 6월 5일 용산 육군구장에서 열린 실업 야구 춘계 리그 마지막 날 경기에서 기업은행은 최관수(작고, 군산상고에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을 붙게 한 지도자로 활약)의 산발 3안타 완봉 역투에 힘입어 제일은행을 2-0으로 누르고 리그 전적 8승2무2패로 우승했다. 그 무렵 야구팬들은 투수전의 묘미를 종종 즐길 수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고투저 현상을 내다본 전문가들이 많긴 했다. 또 시즌 초반이니 타자들이 투수들에게 앞서는 게 일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1일 현재 팀 평균자책점은 삼성(4.02)과 NC(4.19)를 제외하고 모두 5점대다. 이 정도로 투수들이 일방적으로 타자들에게 몰릴 것을 내다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화는 6점대에 근접한 5.88이다. 자책점에 1~2점 정도를 보탠 게 실점이라고 할 때 한화는 적어도 7점 이상을 뽑아야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현재 한화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9점에 그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계산이 서지 않는다.’
올 시즌 타자들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완투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1경기라도 마운드에 오른 9개 구단 투수는 170명. 이 가운데 완투한 이는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와 삼성 릭 밴덴헐크 딱 두 명이다. 리그 전체에서 완투가 달랑 두 차례이니 완봉승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화는 투수 22명, LG는 23명이 마운드에 올랐다. 다급해진 마운드 사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최근 20여 년 사이 투수전이 사라진 것은 타자들의 기량이 늘어난 결과만은 아니다. 여러 요인이 깔려 있다. 투수 분업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대체로 1990년대 초반 투구 수 관리를 기초로 선발~셋업맨~마무리로 이어지는 투수 분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팬들도 투구 수를 세기 시작했다. 완투형 투수는 서서히 사라져 갔고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인물이 최동원(작고)과 선동열이다. 두 투수는 1980년대 후반 선발로 3차례 맞대결을 펼쳐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승패를 주고받은 2경기(해태 1-0 롯데, 롯데 2-0 해태), 15회 연장 2-2 무승부 등 모두 두 투수의 완투 경기였다. 무승부 경기에서는 최동원이 공 209개, 선동열이 232개를 던졌다. 요즘의 시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선동열은 세 번째이자 무승부 경기를 치른 1987년이 프로 데뷔 이후 세 번째 시즌이었고, 이후 1995년까지 국내 리그에서 8시즌을 더 뛴 뒤 1996년부터 4시즌 동안 일본 리그에서 활약했다.
1일 경기에서도 롯데와 두산은 잠실구장에서 29안타를 주고받으며 19점을 올리는 공방전을 펼쳤다. 두 구단이 함께 전광판에 ‘오리알’을 채워 넣은 건 4회와 9회 뿐이었다. 4경기 합계, 94안타(11홈런) 33사사구 54득점이 쏟아졌다. ‘투수전’이라는 용어가 야구 사전에만 있는 말이 될 것 같은 요즘의 프로야구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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