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대통령의 담화는 이를 잘 보여줬다. 이 담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고대했던 한 방울의 눈물-그것이 다른 이들의 불행에 대한 비통함이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향한 연민이든 간에-이 마침내 나왔다는 것과 함께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담화라기보다는 '낭독'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왜 그 자리에 수십명의 기자들이 앉아 있도록 했을까, 왜 그는 질문을 받지 않으려는(결국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대통령은 그의 이른바 '정제된 언어'를 들을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 것일까. 그 정제된 언어로써 눈물을 보이게 된 그 절절한 심정을 좀 더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의 '문법 혁신 실험'은 대선 토론 때에 봤던 것이며, 그럼에도-혹은 그래서-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그의 말을 모범으로 삼든 혹은 반면교사로 삼든 제 나름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질문을 받아 달라는 것이 그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없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을 받아 주고, 좀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이를 테면 대통령 자신이 사과한 일을 교사들이 집단으로 밝힌 것에 대해 담화 다음 날 중징계를 하려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런 '그로테스크'한 점들 몇 가지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 줬으면 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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