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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대통령님, 부디 질문을 받아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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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말로 이뤄진다. 정치인은 말과 가까이해야 한다. 정치인, 지도자의 언어가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사유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언어생활의 일종의 선도적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매우 새로운 실험을 보고 있는데, 바로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의 언어생활이다.

엊그제 대통령의 담화는 이를 잘 보여줬다. 이 담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고대했던 한 방울의 눈물-그것이 다른 이들의 불행에 대한 비통함이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향한 연민이든 간에-이 마침내 나왔다는 것과 함께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담화라기보다는 '낭독'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왜 그 자리에 수십명의 기자들이 앉아 있도록 했을까, 왜 그는 질문을 받지 않으려는(결국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대통령은 그의 이른바 '정제된 언어'를 들을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 것일까. 그 정제된 언어로써 눈물을 보이게 된 그 절절한 심정을 좀 더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자신의 정제된 말을 들려줄 만큼 '정제된' 여건, '정제된' 상황은 그리 쉽게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혹시 염려 때문이 아닐까. 청와대로 부른 유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주어와 술어와 목적어를 자유롭게 뒤섞는 그의 파격적 언어가 혹시 국민들(특히 말하기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걱정해서였던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의 '문법 혁신 실험'은 대선 토론 때에 봤던 것이며, 그럼에도-혹은 그래서-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그의 말을 모범으로 삼든 혹은 반면교사로 삼든 제 나름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질문을 받아 달라는 것이 그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없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을 받아 주고, 좀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이를 테면 대통령 자신이 사과한 일을 교사들이 집단으로 밝힌 것에 대해 담화 다음 날 중징계를 하려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런 '그로테스크'한 점들 몇 가지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 줬으면 한다.
부디 걱정 말고 질문을 받아 주기를! 담화보다는 대화를, 살아 있는 대화를 해 주기를!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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