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아바이는 그런 범죄나 범죄자는 아니다. 그냥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을 가리킨다. 오래 전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졸지에 실명이 왔거나, 혹은 큰 부도를 맞아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사정을 호소한 뒤에 물건을 팔던, 그 익숙한 레파토리를 생각하면, 기아바이는 그 인생 막장에 다다른 기아(饑餓)를 호소한 뒤 바이(buy)를 애걸하는데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도 있다.
기아바이라는 말을 만난 것은, 홍신선 시인의 시 '마음경 59'에서이다.
군포에서 의왕구간 전철 안에서
소리 짓밟히는 기아바이 행상꾼 녹음기 릴 테이프에서
그가 덜컥덜컥 튀어나온다
반쯤 돌린 초췌한 그의 옆얼굴
고3시절 진학 포기하고 밴드부에 혼자 남아
중고짜리 트럼펫만 자랑스럽게 불던
지방 방송국 경음악단 한 구석을
늙어서도 끝끝내 지키며
떠돌았던
그
내 마음 시골학교
얕으막한 담장 밖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증기 배출하는 압력밥솥처럼 몸피 큰 나무 속에 오래 들끓던
덜 퍼진 밥알만한 수천수만 꽃알들
확확 터져 나왔는가 몰라
합주들 쿵쾅대며 실습하고 있는가 몰라
싸구려 테이프나 시디를 파는 기아바이를 바라보며 저 시인은 고3시절의 한 친구를 떠올렸다. 그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그 안에 시골학교를 그대로 두고 담장 밖에 여전히 밥알만한 이팝꽃을 떠뜨리고 있는 것이다. 기아바이에서 저 시골학교로 가는데는 1초도 안걸리는 광속의 이동이다. 대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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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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