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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춘사를 당했다?(20)

최종수정 2014.04.24 14:19 기사입력 2014.04.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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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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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보니 '춘사를 당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다. 椿事. 사전을 찾아보니 '뜻밖에 생기는 나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게 왜 춘사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椿은 참죽나무를 말한다. 참죽나무는 우리가 가죽나무라고 불러온 그 나무이다. 순이 향기롭고 맛있어 경북 상주에선 특화농산물로 내놓는 바로 그것이다. 나무에 봄(春)이 들어가 있으니, 이 봄날의 대표나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왜 그게 나쁜 일을 뜻하는 말에 들어가 있는가. 아리송하다.

중국에서는 춘(椿)이라는 나무가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양이다. 우리가 남의 아버지를 우아하게 호칭할 때 '춘부장'이라고 배운 그 말은 바로 참죽나무 집에 사시는 어르신(椿府丈)이라는 뜻으로 오래 사시라고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중국의 언어관습까지 흉내내던 옛시절의 얘기이니, 이런 말을 굳이 살려쓸 필요는 없으리라.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이 나무가 어찌하여 불운한 일을 표현하는데 쓰였을까. 의문은 자꾸 커진다.

일본에서는 춘(椿)은 동백나무이다. 그들은 '얄궂은 일, 괴상한 일'이라고 표현할 때 춘사진사(椿事珍事)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왜 춘사라고 쓰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누군가 그 의미를 아는 이가 있으면 이 답답함을 풀어주기 바란다.

이렇게 헤매다 보니, 문득 1848년 프랑스 알렉상드르 뒤마가 발표한 '춘희(椿姬)'가 떠오른다. 춘희는 풀면 '동백아가씨'란 뜻이다. 여주인공 마르그리뜨 고띠에는 한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을 달고 다니고 5일간은 빨간 동백꽃을 달고 다니며 극장이나 사교계를 누비는 귀부인인데 실은 창녀이다.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고띠에는 영혼의 대혁신이 일어난다. 하지만 사랑은 도전과 시련을 만나고, 고띠에는 죽음을 택한다. 춘희스토리를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의미는 '길을 잘못 든 여인'이란 뜻이다. 1928년 우리나라에서도 춘희의 내용을 흉내내어 평양키네마사에서 영화를 만들어 조선극장에서 개봉했다.

뒤마가 소설을 쓴지 20년 만에 조선 땅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글로벌한 감각이 그때도 만만찮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춘희'는 1963년(64년이라고도 한다) 이미자의 애절한 목소리를 타면서 일약 대한민국 으뜸의 대중 아이콘이 된다. 최근의 조사에서도 대한민국 대중가요 토털 1,2위를 다투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판이다. 춘희는 '동백아가씨'(한산도가 노랫말을 지었다)라는 한글 이름으로 풀려나왔고 100만장이 넘는 음반이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그런데 5.16 쿠데타 이후 한일기본조약 반대 저항에 부딪쳐 있던 박정희 정부는, 스스로의 '항일 기백'을 보여주겠다는 심산이었던 듯, 동백아가씨가 '일본 물이 들었다(倭色)'면서 1965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리고 68년에는 음반도 팔지 못하게 한다. 혹자는 가사 말미의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부분이 북괴의 적화 야욕을 닮았다는 혐의가 추가되었다고 하나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이 노래가 뜬 이후 64년에 '동백아가씨'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엄앵란. 신성일이 주연한 이 영화는, 저 순정의 춘희에 대한 최루성 헌정본이었다. 대학생을 사랑한 섬처녀는 '동백빠아'에서 일하는 여급이 되고, 사랑은 어쩌구저쩌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의 가슴을 빨갛게 멍들게 했다. 2009년 장사익은, 심장을 오랫 동안 벌렁거리게 했던 이미자 버전의 동백아가씨를 일순간에 잊어버릴 만큼, 멍든 가슴이 다 터져나는 목청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요즘 이 노래를 귀에 꽂고 다니면서 출퇴근 때 듣고 있는데, 안그래도 짧게 휙휙 지나가는 봄날을 조석으로 아리게 한다.

'춘사를 당했다'는 것이, 춘희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저 말은 너무나 똑 떨어지는 표현이 된다. 뒤마의 춘희는 동백꽃 색깔을 바꾸며 폼을 잡다가 인생의 색깔을 바꿨고 결국 삶에서 죽음으로 원천색을 갈아타고 말지 않았던가. 그것의 변주인 라트라비아타는 지금까지도 단골로 대한민국 무대에 올려져 오래된 춘사를 리플레이하고 있는 판이다. 이미자의 봉변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인 흑막에 걸려들어 어이없이 노래조차 부를 수 없게된 온 국민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입도 뻥긋 못하도록, 동백아가씨 춘사를 당했으니, 이 말이야 말로 우리 근대사의 어이없는 질곡을 함의하는 기막힌 표현이기도 하리라. 굳이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선운사에서, 막 떠나가려는 여인을 향해 무릎 꿇은 송창식의 눈물이 아니더라도,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선운사 부근 술집여자의 쉰 목소리에 남아있는 지난해 동백꽃잎 지는 소리를 앞당겨 듣던 미당의 귀가 아니더라도, 이 말은 슬프고 답답하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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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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