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생활경제]④노후자금 잃은 노인들 구제는?
불완전판매, 배상 절반도 안돼…판매사 측 책임 입증 어려워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은행직원의 적극적인 권유로 7200여만원을 펀드에 투자했다가 수익률이 악화돼 원금의 절반 이상을 잃은 A씨. 그는 "67세의 나이에 펀드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음에도 펀드에 가입하게 해 피해를 봤다"며 은행과 은행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한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법원은 A씨가 기존에도 펀드에 가입했던 경험을 근거로 원금손실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로 노후대비자금을 잃은 노인들이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불완전판매란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상품의 내용 및 투자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한 경우'를 말한다. 불완전판매 피해 노인들은 대부분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라는 '유혹'에 이끌려 상품에 가입한 후 원금마저 잃고 법정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법원은 투자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상품을 잘 따져보지 않은 투자자에게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용케 보상을 받더라도 손해액의 절반 이상을 돌려받기 힘들다.
펀드운용사와 고객 간의 법정공방으로 떠들썩했던 '우리파워인컴펀드 불완전판매 사건' 또한 수많은 노인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이 상품과 관련해 제기된 집단소송들 중에는 60대 이상이 원고 7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경우도 있었다. 1심은 운용사의 손해배상책임을 15~40%로 한정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고 손해액의 70%까지 고객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파격적' 배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판결은 펀드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시 70%의 배상판결을 받은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사건의 경우 투자설명서의 '허위기재(사기)'가 사실로 판명나면서 배상비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높은 배상 비율을 인정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상품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투자설명서에 확연히 판매사 측의 과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불완전판매 사건의 배상비율은 50%도 채 되지 않는다. 판매자의 책임이 어느 정도 인정되더라도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무는 결국 투자자들의 자기책임원칙을 전제로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투자설명서, 상품가입신청서 등에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용을 이해했다"는 부분에 고객들이 자필서명을 하게 돼 있는데, 이는 소송 과정에서 판매사 측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근거가 된다.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사건을 대리한 이성우 변호사는 "피해자의 금융지식을 수치로 산출할 수 없는 법원으로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양사태' 집단소송 사건을 맡은 강래혁 변호사는 "법원이 피해자 과실을 고려할 때 학력, 직업, 나이, 투자경험, 자산 대비 투자금액이 차지하는 비중 등 5가지 기준이 있다"며 "이 중 투자경험이 아무래도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서류상 '투자경험'은 많아 보이더라도 상품을 제대로 알고 거래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성우 변호사는 "노인 피해자들을 보면 은행 직원과 인적관계 때문에 상품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상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을 샀다가 피해를 입고 소송중인 김학영씨(경기 일산시)는 올해로 80세다. 그는 "시중은행을 거래하며 알게 된 직원이 삼화저축은행으로 이직하면서 전화를 걸어와 제2금융권을 통해 거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자본비율을 보여주며 안전하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10년 동안 알고지낸 직원이 나를 속일 줄은 몰랐다"며 억울해했다. 전직 은행원인 강모씨(31ㆍ경기도 군포)는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젊은 사람들에 비해 나이 드신 분들은 직원을 믿고 상품 권유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인 피해자들이 특히 많았던 '제일저축은행 후순위채권 분쟁조정'에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손해액 산정 시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과실비율을 5%, 만 80세 이상에게는 10%를 각각 감축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모두 회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성우 변호사는 "금융위가 투자자의 나이를 고려하기는 했지만 '투자경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노인투자자 스스로 투자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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