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보통 취업규칙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대한 규정'으로 대체
-노조가 없는 중소·중견기업 근로자들 쉬지 못하거나 월급 못 받아
#경기도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설 연휴지만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달까지 밀려있는 주문이 있어 사장이 직원들에게 설 연휴에 근무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사장이 요청을 했어도 연차를 쓰고 쉴 수도 있지만 A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출근을 택했다. 눈치도 보이는데다 연차를 쓰게 되면 설에 쉰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2~3일 월급이 깎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A씨는 "벌써 2년째 고향에 가지 못했다. 떡값은 물론이고 설에 유급휴가를 쉴 수 있는 것은 우리 같은 영세업체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한숨을 토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조가 없거나 20인 이하의 일부 중소기업들이 설날을 연차로 간주해 휴가는 물론이고 수당도 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정, 설날, 추석, 삼일절, 광복절,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일명 '빨간 날'로 불리는 공휴일에 근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빨간 날에 근무를 쉴 경우 '무급휴가'로 분류해 월급에서 그 날짜 만큼 수당을 차감하고 있었다.
중소·중견기업이 이처럼 배짱 경영을 일삼고 있는 것은 근로기준법 때문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만 보장하고 있다. 이 밖에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는 또 다른 유급휴일은 '근로자의 날' 뿐이다. 그러므로 경영자가 직원에게 월급을 주면서 쉬게 해줘야 하는 날은, 법적으로 일요일과 근로자의 날 뿐이다. 설날, 추석, 어린이 날 등은 원래 법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이 아니다.
A씨는 "노조가 있는 기업들은 취업규칙에 '빨간 날'을 유급휴가로 넣을 수 있지만 우리같은 작은 업체들은 그러합 협상이 불가능하다"며 "법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회사마다 적용하는 사항이 달라 중소·중견기업의 근로자들은 경영자가 빨간 날 근무를 강요해도 저항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정치권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공무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도 국경일 및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에는 일반기업도 근로자에게 공휴일을 의무적으로 유급휴일로 주도록 하고, 연차 휴가일수에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한 의원실 측은 "대체휴일제가 공휴일의 범위를 넓히는 제도이라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이를 무급이 아닌 유급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이라며 "이번 2월 임시국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