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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오재영 "십 년 교훈으로 십년지계(十年之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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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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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관하는 시상식에는 기량발전상(Most Improved Player)이 없다. 올해 제정됐다면 상당한 각축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특히 타자들의 성장이 돋보였다. 채태인(삼성, 타율 0.381 11홈런 53타점)과 신종길(KIA, 타율 0.310 4홈런 50타점 29도루)이 대표적이다. 강력한 후보는 마운드에서도 발견된다. 넥센의 오재영이다. 후반기 선수단에 합류, 2683일 만에 선발승을 따냈다. 10경기에 출장해 4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2.73을 남겼는데, 넥센은 그가 선발 등판한 7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선수단의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에 마침표를 찍은 호투였다고 할 수 있다. 역대 프로야구에서 중간계투로 뛰다 선발로 전향해 성공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2004년 신인왕 수상 뒤 긴 침체기를 보냈던 오재영이 기어코 반등을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그의 진지한 답변 속에 숨어있다.

다음은 오재영과의 일문일답

-여느 때보다 보강운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런가(웃음). 이지풍 트레이닝코치의 지도에 맞춰 웨이트트레이닝을 충실히 소화할 뿐이다. 쉬면 딱히 할 일도 없고.
-재활훈련,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등을 차례로 소화하느라 쉴 시간이 별로 없었을 텐데.
▲야구 외에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식사를 해결하거나 영화를 볼 때만 외출한다.

-포수 허도환과 한 집에서 함께 살지 않나.
▲올해부터 혼자 지내고 있다. 시즌 초 2군에서 재활을 하느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 도환이 형이랑 살 때가 좋았다. 볼 배합 등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눌 수 있었다.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했고. 혼자 지내니까 너무 심심하다. 동료들이 가끔 우스갯소리로 놀린다. “‘나 혼자 산다(MBC 예능프로그램)’ 찍고 있다”고(웃음).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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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데 성적은 더 좋아졌다. 10경기에서 4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2.40을 남겼다. 짧지만 꽤 강렬한 시즌이었다.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분명한 소득은 있었다. 부족한 게 뭔지도 깨달았고. 여느 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야할 것 같다. 스스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어떤 점이 부족했나.
▲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뒤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이 바뀌었는데 그만큼 준비를 하지 못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주된 이유다. 구질도 더 다듬어야 했다. 만족스런 수준이 아니었다.

-체인지업과 커브의 비중이 많이 늘었던데.
▲중간계투로 나설 땐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소화가 가능했다. 선발로 바뀌면서 긴 이닝을 책임지다 보니 몇 가지 변화구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체인지업과 커브였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뛰어보니 변화구를 몇 개 던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믿고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두 개는 있어야겠더라. 그 두 개를 선택하고 제구를 다듬는 것이 다가올 스프링캠프에서의 숙제다.

-직구의 완급조절이 꽤 돋보인 시즌이었다.
▲직구도 그렇지만 변화구에서도 강약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나를 던지더라도 타자에게 다른 공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 공에 조금 더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제구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고.

-어찌됐든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을 재확인한 시즌이었다.
▲염경엽 감독님에게 꼭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실 선발투수 준비를 더 잘 할 수 있었다.

오재영(왼쪽)과 허도환[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왼쪽)과 허도환[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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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인가.
▲염경엽 감독님이 사령탑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내게 다가와 “선발투수로 뛸 생각도 하면서 재활에 전념해”라고 했다. 그땐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기에서 안주하지 말라는 당부 정도로만 여겼다. 진심을 알았어야 했는데(웃음).

-사실 이전부터 선발 전환 이야기는 있었다.
▲2010시즌을 앞두고 이장석 대표로부터 “선발로 뛰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내심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어떻게든 기회가 오길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선수단은 내게 기회를 줄 만큼 여유가 없었다.

-속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퓨처스리그에서 적잖게 선발투수로 나서 그렇진 않았다(웃음).

-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전까지 계속 중간계투로 기용됐다. 왜 선발 전환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선발투수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초반 불펜에서 잘 풀리지 않았다. 중간계투로서 괜찮은 성적이 나온 건 욕심을 버린 뒤부터였다. 그렇다고 미련을 아주 버렸던 건 아니었다. 그저 중간계투에서 안주하기가 싫었다.

-그 때문에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등판을 한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꽤 많은 경기에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기회라는 것이 잘 오지 않더라. 야구가 쉽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고민을 많이 했다.

-올해 선발투수 전환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겠다.
▲물론이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주어져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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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프로야구를 살펴봐도 불펜에서 선발로 다시 전환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런 기회가 찾아올 줄 몰랐다. 넥센에선 더더욱 그럴 것 같았다. 왼손투수가 부족하니까. 많은 공을 던져도 다음날 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찾아왔다. 그런 패턴에 익숙해지다 보니 선발투수 전환은 사실상 물 건너간 줄 알았다.

-선발투수 준비가 어렵지 않았나.
▲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뒤 충분한 휴식을 취해 그렇진 않았다. 정규시즌 중에 전환을 시도했다면 분명 실패했을 거다. 체력을 소진한 상태에선 뭘 해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다. 마음만 다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렸을 때 고생하며 배운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치열한 경쟁에서 얻은 인내와 도전정신이다. 선발투수를 하게 됐다고 그걸 내 자리로 여기면 오산이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 번 놓치면 다시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깨달음이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시 선발투수로 서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적이 괜찮게 나오지 않더라도 아프지 않고 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무슨 의미인가.
▲신인왕을 거머쥔 2004년 말이다. 사실 청원고를 졸업하기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데뷔 시즌 10승(9패)을 챙겨 이듬해 욕심을 부리게 됐다. 투구 수를 조절하며 던져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너무 어려 몰랐던 것 같다. 의욕만 앞서다보니 내리막을 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뒤 긴 침체기를 보냈다.
▲최상의 밸런스를 다시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내겐 분명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어떤 소득이 있었나.
▲야구선수로서 살아가는 법을 깨우쳤다. 더 이상 빠른 공에 집착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관념에서 정체됐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야구공을 내려놓았을 것 같다. 그 주위를 맴돌고 있거나.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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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법을 깨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2006년 겨울, 상무 입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렸다. 어떻게 하면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만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지금 필요한 건 구속이 아니라 제구라고. 사실 빠른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나를 강속구 투수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제대 뒤 내 투구는 한참 부족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 스스로는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서 중간계투를 맡게 된 건가.
▲그렇다. 나름 준비과정이 있었다. 중간계투는 제구 없이 해낼 수 없는 포지션이다. 그걸 이루려고 투구 감각을 찾는데 중점을 두고 훈련했다. 그렇게 1군에서 지내면서 야구인생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는 데뷔 시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지 않았나. 당시와 비교하면 분명 내 모습은 발전하고 있었다.

-상무나 경찰청에서 터닝 포인트를 찾는 선수가 참 많은 것 같다.
▲김정택 당시 상무 감독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투구 수를 알맞게 조절해주시면서 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하게 해줬다. 멘탈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셨고. 조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중간계투를 준비한 건가.
▲그렇다. 어떻게 하면 1군에 합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찾은 해답이었다. 제대를 6개월가량 앞두고 매 경기를 불펜에서 대기했다. 모두 김정택 감독님과 박치왕 코치님(현 상무 감독)이 배려를 해주신 덕분이었다.

-군 복무를 적절한 시기에 해결한 것 같다.
▲정말 그런 것 같다. 2, 3년차 때 성적이 바닥을 쳤으니 시기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만일 더 늦췄다면 야구를 매우 힘들게 하고 있었을 거다. 당시 군대를 가겠다는 의사를 적극 수용해주신 분이 염경엽 감독님이었다. 현대 유니콘스 프런트로 일하시고 계셨는데 잘 다녀오라며 격려해주셨다.

-안타깝게도 상무에 있는 동안 소속팀 현대는 문을 닫았다.
▲군인 신분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었다. 원래 성격이 긍정적이다. (오)재일이(두산)와 내무반에서 함께 지냈는데 서로 해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야구를 아예 못하게 된 건 아니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운이 좋은 것 같다. 히어로즈로 재창단한 2008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던데 그 과정을 겪지 않았다.

오재영(왼쪽)과 염경엽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왼쪽)과 염경엽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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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확실히 통증이 사라졌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완치 과정에서의 통증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하다. 물론 공을 못 던질 정도는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부상을 안고 산다. 특히 1군 선수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재활과정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생애 가장 지루한 시간이었다. ‘뭘 하든 이 순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강진에서 팀 동료들과 함께 지내 외롭지 않았을 것 같은데.
▲똑같은 프로그램을 매일 소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야구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선수들과 함께 뛰지 못하다 보니 소속감도 사라졌던 것 같고. 재활군은 2군에서도 따로 연습하지 않나. 그 대부분은 어린 친구들이다. 함께 이야기를 공유할만한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게 누군가.
▲안병원 재활코치(현 2군 투수코치)다. 너무 많이 의존해 지금도 미안할 정도다.

-재활을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나 보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게 됐다. 사람이 정말 예민하게 바뀌더라. ‘나중에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겨우 몇 차례 고비를 넘겼던 것 같다. 실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님에게는 기대고 싶지 않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많이 걱정하는 분들이다. 더 큰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걱정하는 게 싫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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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스스로 해결하는 편인가.
▲그렇다. 내 짐을 남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보낸 시간이 많아 그런 성향이 생겼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경기도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1년여를 홀로 하숙생활을 하며 떨어져 지냈다. 그 뒤로는 숙소 생활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얼굴이 동안에 가까워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상하다. 사람들은 노안이라고 하던데. 데뷔가 빨라서 그런지 다들 내 나이가 꽤 많은 줄 안다. 물론 데뷔 때보다 많이 늙긴 했다(웃음). 꽤 기복이 많았던 인생이다. 좋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야구를 하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고.

-야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1군과 2군을 오르락내리락한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내 자리가 없어 정말 힘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2군의 육성군 선수들은 심적으로 편할 수 있다. 1군에서 입지가 불안한 선수는 다르다. 언제 1군에 승격하고 2군에 내려갈지를 알 수가 없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올해가 프로에 입문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프로라는 곳, 정말 무서운 곳이다. 적잖은 선수들이 야구팬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구단에서 방출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야구를 절박하게 해왔던 것 같다. 프로는 하루하루가 경쟁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다 보니 이젠 어느 정도 이곳만의 법칙이나 생리가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내년은 내게 정말 중요한 시즌이 될 것 같다.

-선수단에서의 위치도 그럴 것 같다.
▲이제 중간 정도가 된 것 같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후배들과의 대화가 꽤 중요하게 느껴진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많이 불어넣고 싶다.

-어린 시절 어떤 선배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나.
▲최근 고양 원더스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수경 선배다. 존경스러울 정도의 노력파다. 모든 선수들이 인정할 정도다. 재능도 빼어나지만 온몸이 열정으로 가득하다. 불펜코치를 하면서도 공을 놓지 않았다. 그런 점들이 내게 적잖은 자극제가 됐다. 정말 멋진 선배라고 자부한다.

오재영(왼쪽)과 박동원[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왼쪽)과 박동원[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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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염경엽 감독과의 궁합은 어땠나.
▲1군을 짧게 경험했는데 궁합이라고 말할 게 있겠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야구를 무척 세밀하게 접근하시는 분이다. 선수들과 소통도 자주 나누시고.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기 마련인데 그 간격이 무척 좁아진 것 같다. 뭔가 차별화된 느낌을 받았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나.

-그렇다. 구단과 선수단 모두에서 변화가 느껴진다.
▲구단도 정말 많은 발전을 이뤘다. 창단 초만 해도 선수들 모두 걱정이 많았다. 나 역시 모기업의 지원 없이 운영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살림살이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모든 선수들이 구단을 좋아한다. 좋은 운영이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고. 적극적인 지원에 모든 선수들이 매료된 것 같다. 코치진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들과의 친밀도가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들이 올해 좋은 결실로 이어진 것 같다.

-이장석 대표는 항상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더라.
▲홈(목동구장)의 규모가 작다보니 경기를 하다 보면 가끔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정말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다.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다.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는데.
▲10경기밖에 뛰지 않았는데 테이블까지 차릴 필요가 있겠나. 구단에서 주는 대로 받을 생각이다. 이번에는 그래도 된다. 내년을 노리겠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정규시즌 후반 1군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넥센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어려웠을 수 있다.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야구에도 흐름이란 것이 있지 않나. 코칭스태프에서 분위기가 축 쳐질 것을 예상하고 반등의 카드로 나를 준비시킨 것 같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보니 개인 성적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어떻게든 팀을 가을야구로만 이끌고 싶었다.

-8월 22일 목동 NC전이 그 성공적인 첫 발이었다. 7년여만의 선발 등판에서 5이닝 2안타 1실점(비자책)의 호투로 2683일 만의 선발승을 챙겼다.
▲2683일이란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솔직히 내겐 큰 의미가 없었다. 그 다음 경기만 생각했던 것 같다. 투구 내용이 괜찮았지만 앞으로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중한 1승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기분 좋은 시작 정도로 해두자. 그 1승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귀중한 승리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때 많은 기자 분들이 찾아오셨는데 이렇게 말했다. “중간계투로 힘들게 던질 때도 좀 찾아오시지 그랬어요”라고(웃음).

-중간계투가 고생한 만큼 대접을 못 받는 보직이긴 하다.
▲어떤 상황에 투입될지 모른다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인 포지션이다. 한 시즌 최소 100경기를 준비하는 것 같다. 매 경기마다 무난한 투구를 보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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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섭섭했나 보다.
▲그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언젠가는 중간계투들도 대우를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점점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으니까 꼭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내년 우승후보로 넥센을 꼽고 있다.
▲그런가. 올해 창단 첫 가을야구를 아쉽게 매듭졌으니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5이닝 동안 안타 3개를 허용했는데 2개가 홈런이었다.
▲많이 아쉽지만 그것도 내 실력이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뜻이다.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하는 것 외엔 정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마운드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듯 보였다.
▲땀을 많이 흘려 그렇게 보인 게 아닐까. 원래 많이 나는 체질이다. 물론 긴장도 많이 했다. 그래야 투구가 더 잘 된다. 긴장 때문에 경기를 망치는 선수도 있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내가 대표적이다(웃음).

-내년에도 선발 등판을 계속 볼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정해놓은 목표는 없다. 한 가지 바람만 있다.

-그게 무엇인가.
▲이닝을 더 많이 소화하고 싶다. 물론 올해 상승세도 계속 이어가고 싶고.

-이닝 소화에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투수에게 오랫동안 던질 수 있다는 것보다 매력적인 것은 없다. 야구인생에서의 목표도 그렇다. 최대한 오래 뛰고 싶다. 스타가 되진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키고 싶다. 뭐, 모든 선수들의 꿈 아니겠나. 서른 중반만 되면 대부분 그라운드를 떠나니까. 최근 베테랑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그 수는 적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더 말해도 될까.

오재영(왼쪽)[사진=정재훈 기자]

오재영(왼쪽)[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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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다른 구단을 옮겨 다니면서 오래 뛸 수도 있겠지만, 그 둥지가 계속 히어로즈였으면 좋겠다. 마흔 살에 이곳에서 은퇴하는 것이 소원이다. 그렇게 되려면 정말 잘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보나.

-결혼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올해는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내년에 할 거다(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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