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결국 소문에 그쳤지만 그러나 많은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우를 피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사실 '맞춤법 전과자'의 양산은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를 가장 쓰기 어려운 문자로 만드는 맞춤법 자신이야말로 그 진짜 주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사전마다 기준이 다르고, 전문가라도 함정에 빠지게 한다는 규탄을 듣지 않는가. 그러니 비난받을 건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28자를 만들면서 '제 뜻을 펼 수 있기만을 바랐을 뿐인', 그래서 연철법으로 표기하며 띄어쓰기도 없게 한 세종의 애민정신을 거스른 후대의 학자들이 아닌가, 라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그 '자유에의 길'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큰 유혹을 하나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주변을 배회하며 세이렌의 노래로 우리를 미혹케 하는 '오탈자'라는 인물을 멀리하는 것이다. 그에게 홀려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글이 참담히 망가지고 오점으로 얼룩졌던가.
나는 그를 우연히 만나볼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털어놓지 않으려 하는 그에게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집요하게 물었다. 그는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무서워하듯, 어둠이 빛에 물러나듯이 무서운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실토했다.
그는 마지못한 듯 답했다. "국어사전과 퇴고요"
오탈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끝내려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적는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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