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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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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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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얼굴에서 의심의 빛이 가시지 않자, 여자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선생이라 하셨지요?”
“예. 장하림.”
“작가 선생님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남경희라 해요. 어쨌건 장선생님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은지 어쩐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오늘 아침 일이 고마워서 인사 겸 해서 온 것 뿐이예요.”

하림의 반응이 신통치 않게 여겨졌는지 여자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떠올랐다. 하림은 자기 의도와 다르게 이층집 여자, 그제야 그녀 이름이 남경희란 것을 알았다, 가 자신없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리자 비로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해요. 제가 도움이 될 일은 별로 없겠지만..... 저도 알아요. 어젯밤 일은 분명히 영감님이 저지르신 게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 전의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겠네요. 왜냐하면.....”
“알아요. 그 전의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남경희가 따지듯이 말했다. 하림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말처럼 비록 영감이 하지 않았다 해도 자기가 본 것이 아니니, 아니라고 거들며 나설 확신이 서질 않았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짐승들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면을 쓴 자들이다. 차라리 흉악하게 생겨먹은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옛날 도적들이라면, 나 그런 놈이요, 하고 알려주기라도 하련만 요즘 도적들은 겉보기론 멀쩡하다 못해, 선량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영감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비록 나중 일은 다른 사람이 그랬다 하더라도 처음 일은 총을 가진 영감이 욱, 하고 얼마든지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다 아직 하림은 영감을 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윤여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영감 역시 분명 그리 호락호락은 인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사의 표현을 백프로 믿을 건 못 되었지만 그녀는 그를 ‘사나운 인상’ 이라고 표현을 했다. 사납다는 표현은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 하림의 속내를 눈치 챘는지 남경희가 조용하게 말했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도 정상적인 분이 아니예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셨구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아버진 젊은 시절 오랫동안 직업군인을 하셨죠. 조금 고지식하긴 했지만 군인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철저한 분이셨어요.”
하림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가하셨어요. 맹호부대라고 들어보셨나요?”
“맹호부대....?”
“예. 그때 베트남엔 우리나라 맹호, 청룡, 백마, 비둘기 부대가 갔는데, 아버진 맹호부대였어요. 베트남 중부 지방에 배치되었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다고 해요. 하지만 그땐 불과 스무 대여섯 무렵이었고, 아버진 용감한 군인이었어요. 훈장도 여러 번 타셨고.....지금도 가끔 그때 그 시절의 노래를 부르곤 하세요.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가셨으니 하는, 그 노래 말이예요.”

“아....”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낮게 탄성을 질렀다. 그 노래는 하림 아버지의 십팔번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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