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는 남매탑 전설로 유명한 상원조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청량사로 불렸다. 920년 고려시대의 도선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고 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렸다. 이후 절의 동쪽에 학(鶴)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 동학사라는 설과 고려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중심인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셨다 해서 동학사라는 설명도 있다.
새로운 행정부 역사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첫 시작을 위해서는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후세대들에게 어떤 의미로 청사가 자리 잡을 것인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세종청사는 '충청도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정부청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모든 업무와 시스템은 여전히 청와대와 서울청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관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으로 서울에 출장 가는 것이 잦다. 공무원들도 서울에서 출퇴근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과천 정부청사가 자리를 잡는 데 적어도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몇 달 만에, 몇 년 안에 세종청사가 행정부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서두를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울중심으로 펼쳐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행정업무를 세종청사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오는 12월에 복지부, 문화부 등 추가로 부처가 세종청사로 내려온다. 국무회의가 세종청사에서 열리고 각종 현안 보고가 세종청사에서 자리 잡을 때 세종청사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된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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