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흡연자들은 누구인가? 우리 사회 공공의 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구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며, 청정한 대기와 공중의 안녕을 위협하는 파렴치한들이다. 그러므로 담배를 추방하고, 흡연자를 몰아낼 때 '우리 사회가 영생을 얻으며 불사할 것이라는 현대의 길가메시 신화(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이들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 그것도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그 폐해만큼 적잖은 위로와 양식이 돼 주기도 해온 물건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생명, 결국은 인간의 삶이 있는 법이다.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자학으로서의 기호에 탐닉하는 의지박약자로부터, 공중으로 사라지는 담배 연기가 그려내는 천변만화의 무늬에서 지상의 어떤 예술도 흉내내지 못하는 이적을 보며 열락을 느끼는 신비주의적 애연가들에 이르기까지 담배에는 수많은 삶, 수많은 인간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금연의 성전이 성공하려면 인간과 담배 간의 복잡다단하며 내밀한 관계에 대한 넓고 깊은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담배에 대한 성전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그건 기호로서 담배를 즐기는 이들, 무분별한 탐닉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담배연기를 무분별하게 뿜어내는 철없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전쟁은 불퇴전의, 단호한 그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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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금연 정책이 고민해야 할 사회경제적 측면이 드러난다. 가령 서울시의 구별 흡연율을 조사해 봤더니 부의 크기와 흡연율은 반비례했다. 왜 담배가 복권처럼 가난한 자들의 세금이 되는지가 드러난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는 이들, 순식간에 소멸되는 담배에서 자신의 인생과의 친연성(親緣性)을 발견하듯 담배 한 모금에서 여행과 취미를 대신하는 여가를 얻는 이들이 흔히 담배를 피운다. 이들을 감히 '생계형 흡연자'들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보건 당국은 이들의 흡연 너머 이들을 흡연으로 이끄는 현실을 봐야 한다.

북미의 인디언에게 담배는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모시던 담배의 신이 있다면 부디 이 땅에 강림하시기를. 바라건대 의지박약자들에게 담배를 끊을 수 있는 결단력을 주시기를. 그리고 또한 담뱃값 인상을 공공 보건의 만능책인 양 여기는 이들에게 진짜 공중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사려와 현명함도 내려 주시옵길!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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