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겨울 지나 '해방공간'으로…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막
노혜리·최고은, 요새이자 둥지로 한국관 재구성
한강·이랑 등 펠로우 참여
베니스 자르디니의 한국관이 하나의 전시장이 아니라 '몸'이자 '공동의 피난처'로 다시 열렸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해방 이후의 역사, 2024년 겨울의 계엄과 광장, 제주4·3과 5·18의 기억을 한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국가관이라는 제도적 무대 위에서 한국관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해방'은 끝난 사건인가, 아니면 계속 수행해야 할 운동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6일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2026 베니스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공식 개막했다. 전시는 최빛나 예술감독이 기획하고 노혜리·최고은 작가가 참여했다. 9일부터 11월22일까지 약 7개월간 관객을 맞는다.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자르디니에 26번째 국가관으로 문을 연 뒤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 무대 진입을 상징해온 공간이다.
올해 한국관의 핵심 개념은 '해방공간'이다. 보통 1945년 해방부터 1948년 남북 정부 수립 전까지의 과도기를 뜻하는 말이지만, 이번 전시는 이를 과거의 특정 시점에 가두지 않는다. 전시 공식 자료는 '해방공간'을 미완의 시간, 반복되는 투쟁, 돌봄과 공동체의 실천으로 다시 정의한다. 특히 2024~2025년 한국의 광장 경험을 현재적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관 자체를 '살아 숨 쉬는 기념비'로 전용한다.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동파이프를 이용해 한국관의 안팎을 관통한다. 수도 설비에 쓰이는 산업 재료가 건물의 벽과 원통형 구조를 찌르고 지나가며, 닫혀 있던 한국관 2층 공간까지 다시 열어 보인다. 작업 제목은 지리학의 자오선이자 동양의학의 경락을 뜻한다. 건물은 더 이상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막힌 혈을 뚫고 순환을 회복해야 하는 신체처럼 제시된다.
노혜리의 '베어링'은 그 반대편에서 둥지의 감각을 만든다. 왁스를 입힌 오간자 약 4000개가 한국관 내부를 감싸며, 관객은 그 안팎을 돌며 8개의 스테이션을 지난다. 애도, 기억, 나눔, 기다림, 전망, 생활, 수선, 설계의 장소들이다. '베어링'은 기계의 회전을 지탱하는 장치이자 '견디다', '떠받치다', '방향을 바꾸다', '출산하다'라는 뜻을 품은 말이다. 전시는 이중의 의미를 통해 해방을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탱과 돌봄의 행위로 바꿔 놓는다.
전시는 두 작가의 설치에 머물지 않는다. 농부·활동가 김후주, 작가이자 가수 이랑,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사진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가 '펠로우'로 참여했다. 한강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장면을 바탕으로 한 조각 작품 '더 퓨너럴'을 '애도하는 스테이션'에 선보인다. 황예지는 2024년 12월 계엄 선포 이후 광장의 장면을 기록한 사진과 글을, 김후주는 남태령 현장의 경험과 토종 씨앗을 은유한 작업을 더했다. 이랑은 신곡 '우리의 ㅁ'을 작곡해 '나눔 스테이션'에 배치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자체도 정치적 긴장 속에서 막을 올렸다. 제61회 국제미술전은 코요 쿠오가 기획한 'In Minor Keys'를 주제로 9일부터 11월22일까지 열린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번 비엔날레에는 100개 국가관과 31개 병행전시가 참여하며, 본전시에는 작가·듀오·컬렉티브 등 110팀이 초청됐다. 쿠오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고, 비엔날레는 유족의 동의 아래 그가 구상한 전시를 큐레토리얼 팀과 함께 구현했다.
개막 전후로 러시아관의 제한적 복귀, 이스라엘관을 둘러싼 항의, 국제심사위원단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비엔날레가 더 이상 순수한 예술 축제만으로 읽히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관의 '해방공간'은 한국 현대사의 특수한 기억을 국제 미술계의 현재적 질문과 맞물리게 한다. 국가 폭력, 광장, 애도, 돌봄, 주권의 문제를 전시의 언어로 다시 묻는 방식이다.
외신의 초기 주목도는 한국관의 공간적 개입에 쏠렸다. 미술 전문지 프리즈는 한국관을 올해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중 하나로 소개했다. 프리즈는 최고은의 동파이프 설치가 한국관을 하나의 신체처럼 관통하고, 노혜리의 오간자 구조물이 8개의 스테이션을 따라 관객의 이동을 이끈다고 짚었다. 한국관은 국가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고정된 기념비로 세우는 대신, 그 안에서 몸이 움직이고 기억이 순환하는 장소로 바꿔 놓는다.
한국관과 일본관의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두 국가관은 자르디니에 자리한 몇 안 되는 아시아 국가관이자 서로 인접한 공간이다. 올해 한국관은 일본관과 처음으로 공식 협업을 진행한다. 최고은의 '메르디앙' 일부는 일본관 부지까지 이어지고, 노혜리의 '베어링'을 수행하는 '베어러'는 일본관 전시의 아기 인형을 한국관으로 산책시키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양국 국가관 사이의 수풀과 경계가 전시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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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베니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관 프로젝트는 2027년 봄 아르코미술관 귀국전과 같은 해 가을 LA한국문화원 순회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해방공간'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하나의 전시명이기보다, 베니스의 국가관에서 출발해 한국과 해외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일종의 네트워크에 가깝다. 올해 한국관이 내세운 해방은 완결된 선언이 아니라, 계속 옮겨 다니며 수행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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