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를 비롯한 신제품에 인공지능(AI) 기능을 제때 탑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2억5000만 달러(한화 약 3670억원)의 합의금을 물게 되면서 한국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미 소비자 1명당 최대 14만원에 달하는 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인데, 미국 내 소비자 한정으로만 보상이 지급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상황을 참조해 관련 사안을 살피고, 조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6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서울YMCA가 애플이 광고에서 강조한 핵심 AI 기능이 실제 구현되지 않고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신고해 지난해 4월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면서 "현재 한국 소비자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관련 사안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5일(현지시간) 나인투파이브맥 등 주요 IT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AI 서비스인 애플 인텔리전스와 차세대 시리(Siri)의 도입 지연과 관련해 제기된 집단 소송에서 주주 및 소비자 측과 이 같은 내용으로 전격 합의했다. 애플은 합의와 별개로 법적 책임이나 위법 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폰 15 프로·16 시리즈 구매자, 보상금 최대 14만원
합의에 따라 2024년 6월10일부터 2025년 3월29일 사이에 미국에서 아이폰 15 시리즈 일부 모델(15 프로·15 프로 맥스)과 아이폰 16 시리즈(아이폰 16·16 프로·16 프로 맥스·16e)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보상금은 기기 하나당 25달러(약 3만6700원)이며, 보상을 청구한 소비자 수에 따라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 최대 보상금은 95달러(약 14만원)다.
이번 소송의 원고 측은 "애플이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조차 없는 상태에서 허위 광고를 통해 투자자와 소비자를 속였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집단소송에 직면한 건 출시를 예고한 주요 AI 기능을 제대로 내놓지 않으면서다.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WWDC) 2024'에서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하고 '개인화된 시리'를 비롯한 핵심 기능들을 그해 가을에 출시하는 모바일 운영체제(OS) iOS 18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발이 지연되면서 이용자들에게 적용된 AI 기능은 글쓰기 도구나 이모티콘 생성, 이미지 편집 등에 그쳤다. 개인화된 시리를 비롯한 일부 기능들은 현재까지도 적용되지 않은 상태다. 개인화된 시리는 사용자 개인의 문자메시지나 메일, 캘린더를 비롯해 이용자가 활용하는 앱 등의 데이터를 AI 모델이 학습한 뒤 음성비서 시리가 사용자의 요청에 맞춤형으로 답하는 기능이다.
오픈AI와 구글 등이 거대언어모델(LLM) 등 AI 서비스를 위한 모델과 인프라 구축에 발 빠르게 나선 반면, 애플은 AI 시장 초기 대처가 늦었다. 결국 애플은 지난 1월 경쟁사인 구글과 계약을 맺고 제미나이 모델을 차세대 AI 서비스에 활용하기로 했다. 제미나이가 적용된 AI 신기능들은 차기 OS인 iOS 27에서 적용될 예정으로 다음 달 열릴 WWDC 2026에서 공개된다.
加·韓서도 "AI 기능 출시 연기, 사기 행위"
애플이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만 합의에 나서면서 글로벌 소비자들에 대한 차별 논란도 불가피해졌다. 애플은 캐나다에서도 같은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했고, 국내에서도 서울YMCA 등 시민단체가 애플의 AI 기능 출시 연기를 표시광고법 위반과 사기 행위로 규정하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YMCA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AI 등 핵심 소프트웨어 기능을 기반으로 결정하는데, 애플이 광고했던 AI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구현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제품에 가격 거품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라며 "허위 광고에 대한 소비자 보상이 필요하고, 전 세계 소비자들이 동일한 광고를 보고 제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미국에 준하는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