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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여성취업, 뿌리없이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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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관은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행정고시 여성 합격자는 모두 9명이었다. 올해 초에는 국장급인 복지정책관으로 발탁됐다. 최초의 행정고시 출신 여성 국장이다. "간부급 여성인력을 적극 양성할 필요가 있어 갑자기 여성 국장 공지가 났다. 이전에 특채 7급으로 들어온 여성인력이 국장직을 맡은 적이 있었지만, 행정고시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그는 서울시의 35명의 국장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쉬지 않고 일해 온 20년은 쉽지 않았다. "큰 아이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일했다. 둘째가 태어난 뒤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지만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힘들더라. 내 출근시간보다 문을 늦게 열어 매번 기다려야 했다. 집에 아이를 봐 줄 할머니를 모셔가며 다녔다." 김 정책관은 "그래도 사기업을 택한 친구들보다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지금껏 사기업을 계속 다니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여성이 사기업에서 임원급으로 승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니까."
이제 행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여성들의 성적이 더 우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에 진출할 때 사기업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자기 머리만 갖고 할 수 있는 고시에 여성 응시자들이 쏠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김국장의 진단이다.

지난 27일 발표된 2012년 행정고시 합격자 중 여성은 43.8%를 차지했다. 일반행정과 국제통상 분야 수석합격자도 둘 다 여성이다. 올해 사법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은 사상 최고치인 41.7%다. 1990년대까지 한자릿수를 맴돌던 고시 여성합격자 비율은 2000년대 들어서며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함께 매해 '여풍(女風)'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실상은 '풍선효과' 측면이 크다. 고학력 여성의 사기업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진입 과정에 차별이 없는 고시에 우수인력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취업률의 경우 남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률이 올라가는데 여성은 그 반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11년 고등교육기간 취업률에 따르면 대졸 여성의 취업률은 50%로 남성의 58.7%에 비해 낮다. 대학원까지 가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대학원을 나온 남성은 80.6%가 취업하는데, 여성은 59.4%에 그친다.
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3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세정(26)씨는 "대기업에도 지원했고 몇 차례 최종면접까지 가 봤지만 합격하지 못해 고시로 방향을 틀었다"며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의 취업이 점점 늦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서 고학력 구직자들의 취업은 더 늦어지는 추세다. 정규직이 많고 임금이 높은 직종을 뚫기 위해 '재도전'을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는 문이 더욱 좁다. 김 씨는 "결국 고시밖에 남은 게 없다"며 "나이가 많은 것도 취업에서 미끄러지는 요소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한다는 각오로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이후의 직장에서의 승진에서도 여성 직장인들의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사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단 입사를 하더라도 보육 지원 등이 미비해 계속 낙오할 수 밖에 없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등기임원 800명 중 여성은 11명으로 1.5%밖에 되지 않는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매출액 기준 상위 30대 기업 중 지난해 6월 분기보고서를 공시한 28개 대기업 직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19.6%로 나타난 것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정규직 기준출산이나 육아 부담 때문에 근속 연수도 짧다. 남직원이 11.7년인 데 비해 여직원은 7.4년에 불과하다.

승진이 막혀 있고 고위직이 적은 데다가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 비정규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임금도 크게 차이난다. OECD의 2011년 조사에서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가 39%로 1위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39%의 임금을 덜 받는다는 얘기다. 한국은 같은 조사에서 2000년에도 40%로 1위였다. 10년간 1%p가 줄었다. 반면 일본은 34%에서 29%로, 미국은 23%에서 19%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협의회 센터장을 맡고 있는 신라대 장희정 교수는 "진로지도에서 남녀 학생이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진로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했다. "관광학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데, 1학년 남학생들에게 물어보면 50살에 호텔 사장이 되겠다고도 한다. 황당하더라도 생애 설계가 있다. 그러나 여학생들에게 50살에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한다." 장 교수는 "고학력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20년 이상 사회활동을 한 모델이 다양하게 있다면 여학생들의 생애설계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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