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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리더學]"거지 한명 돕겠소? 온 백성 돕겠소?" 최승로, 왕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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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리더십키워드-13. 고려 시무 28조에 담긴 철학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하셔야 합니다. 죄지은 자는 모두 법에 따라 벌의 경중을 결정하십시오. 적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다.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이 올 것입니다."
981년 고려 6대왕 성종은 즉위와 동시에 유교사회 건설을 표방하고 이듬해 정5품 이상의 모든 관리에게 시무와 관련한 상소를 올릴 것을 명했다. 이 때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으로 있던 유학자 최승로는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임금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백성을 위해 바른 정치를 펼쳐야함을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성종이 단행한 개혁의 중심이 된 '시무(時務) 28조'다.

그는 5대 왕에 대한 평가를 담은 오조치적평과 함께 마치 이 같은 명을 기다렸다는 듯 28조에 달하는 장문의 시무책을 올렸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그 전문이 수록돼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포커스리더學]"거지 한명 돕겠소? 온 백성 돕겠소?" 최승로, 왕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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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을 올린 982년 당시 최승로의 나이는 56세였다. 최승로는 농익은 학문적 역량과 정치적 내공을 기반으로 젊은 성종을 보좌했다. 서슴지 않고 잘잘못을 지적했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던 성종은 그의 쓴 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2목의 설치와 2성6부제를 바탕으로 한 중앙관제의 정비, 불교행사 폐지 등 유교정치이념을 구체적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이 성종과 최승로에 의해 본격화됐다.

먼저 최승로는 "요지를 가려 국경을 정하고 그 지방에서 활 잘 쏘고 말 잘타는 사람을 뽑아 국방을 맡도록 하라"고 국경에 만전을 기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불사를 베풀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일이 많다. 군왕의 체통을 지켜 이로울 것이 없는 일은 하지 말라"며 통치자가 백성의 세금으로 사치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그는 "왕조의 시위하는 군졸이 많아졌다"며 "태조 때의 법을 따라 날쌔고 용맹스러운 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돌려보내 원망이 없게 하라"고 조언했다. 이는 군졸의 예로 불필요한 인적자원, 경비의 낭비를 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승로는 왕이 통치자로서 작은 것에 급급하기보다 큰 그림을 봐야함을 강조했다. 그는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붓국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보시하나, 적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한다"며 "상벌을 밝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을 오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끔 큰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 것을 당부하는 이야기다. 또한 그는 "사신편에 무역을 겸하게 하되, 때에 어긋나는 매매는 일절 금하게 하라"며 외교적 조언도 빼먹지 않았다.

최승로는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왕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집집마다 찾아가 날마다 만나보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런 까닭으로 수령(守令)을 나눠 보내 백성의 이익이 되고 해가 되는 일을 직접 살피게 하는 것"이라며 외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중들이 군현에 왕래할 때 관이나 역에 유숙해 아전과 백성들을 채찍으로 때리는 등 폐단이 크다"며 이를 금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노비와 주인의 송사를 판결할 때 분명히 할 것"과 "공평한 공물과 요역"도 당부했다.

최승로는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임금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천하가 화평하다'라고 했다"며 "성인이 하늘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 순일(純一)한 덕과, 사(私)가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한다면 그 누가 마음과 힘을 다해 좋은 계책을 고하고 임금을 올바로 도우려 하지 않겠느냐"며 "이 것이 이른바 '임금이 예로써 신하를 부리면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혹시 죄가 있는 경우라도 가볍고 중한 것을 모두 법과 같이 논한다면 태평의 업적을 곧바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법에 따라 처벌할 것도 당부했다.

이밖에 최승로는 "재력만 있으면 다투어 큰집을 지으니 그 폐단이 많다. 제도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헐어버리도록 명해 뒷날에 경계가 되게 하라"며 사치를 경계했다. 그는 "신라 말기에 불경과 불상을 만드는데 모두 금, 은을 사용해 사치가 지나쳤고, 이로 마침내 멸망하게 됐다"며 "엄중히 금해 그 폐단을 고치게 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제사의 비용은 모두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며 "민심을 얻으면 그 복이 기원하는 복보다 많다"며 불필요한 제사를 근절할 것을 당부했다.

최승로의 시무28조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귀족정치를 지향했고 성종에 의해 수용되며 고려 전기 사회를 정비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가 이상으로 여긴 정치형태는 군주가 바른 마음가짐으로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하되 신권과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며 한쪽에 무게 쏠림 없이 견제할 수 있는 상태다.

최승로는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였던 바로 그 해에 태어났다. 그가 10세 되던 해 경순왕은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그대로 넘겨줬다. 급변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그는 신라 6두품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새 서울 송도로 떠났다.

그의 학식은 어렸을 때부터 두드러졌다. 최승로가 태조 왕건을 만나 논어를 줄줄 외는 총명함을 보였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2살이었다. 최승로의 천재성에 감탄한 태조는 상을 내리고 그를 학자들이 드나드는 원봉성(元鳳省)의 학생으로 보내 영재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후 그는 혜종, 정종, 광종, 경종을 거쳐 6대 성종에 이르기까지 왕들을 섬기게 된다. 하지만 신라 6두품 가문 출신인 최승로는 20여년동안 좀처럼 정치 중심으로 떠오를 기회를 잡지 못했고, 과거 출신자들이 신진관료로 등장하게 되는 광종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도움말: 현대경제연구원)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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