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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女星⑭]내 다이어리엔 '8명의 황영미' 일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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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女星 임원 꿰찬 1세대 그녀들의 Success Diary]
⑭황영미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상무

'내 무기는 미소다'
MBA 하나 없는
토종 워킹맘···
집중하니 전문가 됩디다

외국계 회사 근무 20년
'굿모닝' 말문 트는데
보름 걸리더라


황영미 한국피자헛 상무

▲1966년 경북 문경 출생 ▲1988년 이화여대 경영학 학사 졸업 ▲1988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입사 ▲1993년 바이엘 코리아 인사 C&B 팀장 ▲2000년 딜로이트 컨설팅 채용책임자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 인사책임자 ▲2007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이사 ▲2011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상무

황영미 한국피자헛 상무 ▲1966년 경북 문경 출생 ▲1988년 이화여대 경영학 학사 졸업 ▲1988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입사 ▲1993년 바이엘 코리아 인사 C&B 팀장 ▲2000년 딜로이트 컨설팅 채용책임자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 인사책임자 ▲2007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이사 ▲2011년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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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유난히 인복(人福)을 타고 난 사람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꼭 한 둘은 있다.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의 특징은 '미소'가 아닐까 싶다. 웃는 낯은 상대방에 호감을 준다. 그 웃음이 순간의 가식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자신의 것인지는 보면 안다.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인데 뚜렷한 주관이 있고, 때론 고집스러우면서도 냉철하게 일처리를 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을 기자도 종종 목격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인사(人事) 업무만 꼬박 20년.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과 연관된 일만 해 왔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수십만장의 이력서와 인터뷰를 하면서 얼굴을 맞댄 수천명의 구직자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한 우물을 판 보람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현재 한국피자헛 인사지원센터를 맡고 있는 황영미(46) 상무는 "(인사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란 인식이 많다"면서도 "올바른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해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본사에서 만난 황 상무는 다짜고짜 고3 수험생인 딸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주 휴가였는데 집에서 딸 뒷바라지하느라 여행을 가지 못 했다고 말했다. 수험생 엄마 스트레스로 머리도 짧게 잘랐는데 사진이 잘 나올지 걱정했다.

영락없는 수다쟁이 엄마의 모습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180도 바뀌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그는 "휴가 기간 힘들었던 것은 시간이 생겼지만 딸을 위해 당장 해줄 것이 없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외국계 회사 인사 책임자로서, 고3 수험생을 둔 워킹맘으로서, 한 몸으로 7~8개 역할을 동시에 하는 멀티 플레이어 황 상무의 삶은 어땠을까.

◆MBA 하나 없는 '토종 워킹맘'

"해외 MBA 하나 없이 뭘 믿고 버티고 있는 거니?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니야?" 하루는 황 상무의 친한 친구가 시비를 걸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별 다른 학위 없이 외국계 회사에서 20여년을 몸담고 있는 그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황 상무는 모교 은사의 추천으로 1년 반 잠깐 근무한 회사를 제외하고는 줄곧 외국계에서 일했다. "진정한 인사(HR) 리더로 성장하겠다"는 새내기 시절 세운 목표 달성을 위해 회사는 여러 곳을 옮겨 다녔지만 '인사' 업무는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처음 외국계 갔을 때 영국인 사장님이 멀리서 저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숨이 탁 막히면서 숨기 위해 두리번거렸죠. '굿모닝' 그 말 한마디가 안 나오더라고요. 말문 트이는 데만 보름이 걸렸어요."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법한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황 상무는 당당했다. 그는 외국인 임원 앞에서 30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하는 일에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면 어학은 저절로 따라 온다"고 말했다.

흔히 여자라면 남자보다 어학에 능할 것이라는 사회적인 편견에 부담을 갖는 여성들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면접)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외국계라면 어학 능력이 첫 인상을 좌우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준비를 할 필요는 있지만 발음이 얼마나 유창한지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콘텐츠(알맹이)를 먼저 생각하세요."

◆20대 후반에 찾아온 첫 사춘기 잊지 못해

지금은 후배 직장인 앞에서 떳떳하게 나설 수 있지만 그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 상무 표현대로 "미친여자처럼 계속 직장 생황을 하고, 스스로 이 길을 원했던 계기"가 있었다.

'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개방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대학 졸업까지는 순탄한 인생이었다. 교수 추천으로 첫 직장에도 어렵지 않게 입사했다. 직장 새내기로 1년여가 지났을 무렵, 항상 웃음기 가득하고 밝은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그늘이 졌다. 대학 동기가 모두 굴지의 대기업으로 입사할 당시만 해도 "나는 하나의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아!"라며 홀로 다른 길을 택했는데 후회가 막심했다.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꼬박 1년 반을 집에만 있었어요.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서는 인생을 살아도 의미가 없겠다 싶었죠. 아침밥을 먹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 시계를 보면 어느덧 오후 5시더라고요."

그렇게 외국계 회사와 인연이 시작됐다. 바이엘 코리아에 인사 담당 팀장으로 새 출발을 한 황 상무는 이후 딜로이트 컨설팅 채용 책임자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인사 책임자를 거쳐 2007년 한국피자헛에 합류했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종 목표인 인사 리더가 되기 위해 계획한 대로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1999년 후반 컨설팅 붐이 일어났을 땐 '채용'을 직접하고 싶은 마음에 딜로이트로 이직했다. 매일 밤 12시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 상무는 "여성 직장인으로서 체력이 달리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 자기 관리를 시작했던 때"라고 회상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는 최초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16년 만에 인사를 책임지는 임원 자리에 올랐다. "하루는 1억5000만원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호주인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싸우다 그만 울어버렸어요. 격렬하게 싸웠던 기억이 나요. 인사 책임자로 열정은 앞섰는데 직원과의 관계는 성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어느 날, 엄마의 관심이 적었던 탓인지 딸아이가 아파서 직장을 그만둘 지경에 이르렀다. 2년여 아이 곁을 지키고 난 뒤 컨설팅 회사에서 재기한 그에게 한국피자헛은 인연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황 상무는 한국피자헛이 채용한 첫 여성 인사 전문가다.

"피자헛 입사 첫날부터 야근을 했어요. 매일 배움의 연속이었죠. 사실 나이 많은 여자가 인사 담당 임원으로 와 배타적이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즐겁게 같이 일하는 피자헛만의 기업 문화에 매료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어요."

◆여성이 행복한 기업

황 상무가 결혼할 당시(28세)만 해도 여성이 직장을 다니면 감점 요인이었다. 소개팅을 하더라도 50%는 직장 없는 현모양처 여성을 원했다. 다행히 황 상무의 남편은 알아서 결정해도 좋다며 지원군이 돼 줬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여성 중용을 강조하는 등 요즈음 기업과 여성 직장인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20여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니 조직 내 여성의 경쟁력은 '성실성과 균형감'이라고 했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고 일관성 있게 일하는 것과 인맥이나 학연, 지역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인간관계가 여성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라는 얘기다. 황 상무는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뇌물 수수 등으로 문제된 것을 본 적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특히 한국피자헛 등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선도해 나가는 업종일수록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른 산업에 비해 유통이나 외식업은 여성이 성공할 확률이 높고, 장점을 회사에 녹여낼 수 있는 업무가 많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피자 만들어 파는 회사로만 인식되는 피자헛은 사실 '선수' 사이에선 가장 성공한 글로벌 기업으로 꼽힌다. 황 상무는 지난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인재 담당 팀에서 미국 피자헛 본사를 찾아간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월가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 중 하나로 피자헛이 거론됐고, 국내 한 기업의 글로벌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면서 "당시 피자헛 본사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우리의 문화와 사람이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아직 시판 전인 데이비드 노박 얌(Yum) 브랜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쓴 책을 들고 나온 황 상무는 피자헛 기업 문화를 설명하는 데 한참을 할애했다.

◆(결혼한) 여자는 멀티 플레이어

황 상무가 집에서 자기 돈 내고 보는 신문은 총 4개다. 종합지 2개와 경제지 2개. 점점 종이 신문을 멀리하는 세태를 감안하면 짚고 넘어갈 만한 대목이다. 집에서 신문을 4개씩 읽는 것은 단언컨대 세상일에 '욕심'이 많아서다.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욕심쟁이' 황 상무는 늘 바쁘다. 그래서 실수를 줄이고, 놓치는 것을 잡기 위해 자기 관리에 엄격한 편이다. 그는 "2009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고 나만의 사명서를 썼다"면서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보여줬다. 다이어리에는 '한국피자헛 황영미 상무'도 있었지만 엄마, 며느리, 아내, 딸 등 다양한 역할을 맡은 황영미가 있었다.

"아이가 아프고 난 뒤로 생각했죠.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에 펑크가 나는 게 인생이라고. 균형감을 잃지 않는 자기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결혼하면 여성은 기본적으로 3개 정도 역할이 추가되죠? 저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다음 주 일정을 다이어리에 적습니다. 개인적, HR리더, 아내ㆍ엄마, 친구ㆍ동료, 딸ㆍ며느리 이렇게 구분해서요."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니 지혜(딸 이름) 논술 시험과 친구들과의 화요일 모임, 어머니 건강 검진 일정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꽂아둔 사명서 2번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가능하면 내 주위 사람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

황 상무는 "내가 앞에 나서는 것보다 내가 뽑은 사람이, 내가 추천한 사람이 잘 돼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면서 "앞으로 지역사회나 공동체 등 도울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웃어보였다.

은퇴 후 생활의 반은 봉사하면서, 반은 좋은 외할머니로 지낼 생각이란다. 엄마 없이 외롭게 지낸 딸이 매일 "외손자, 외손녀 4명을 안겨줄 테니 엄마는 각오하라"고 협박한다고 했다.

'Be your best self' 가장 최상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황 상무가 본지의 '파워女星' 시리즈 독자를 위해 준비해 온 말이 귓가에 맴돈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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