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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장을 가다] '들끊는 빈지갑' 일자리 줄자 관용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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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장을 가다] '들끊는 빈지갑' 일자리 줄자 관용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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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지난 4일 아테네 공항에서 낯선 경험을 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거쳐 아테네 공항으로 들어갔는데 아테네 공항에서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한 보안검색(Security)과 입국심사(Immigration) 등의 과정이 없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공항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파리에서 타고 온 에어프랑스 항공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빨리 공항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국경을 철폐한 솅겐 조약 덕분이다. 그러나 이같은 '신속한 입국' 서비스는 앞으로 그리스 입국자들이 누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27개 EU 회원국 내무·법무장관들은 지난 7일 룩셈부르크에서 이사회를 열고 솅겐 조약의 적용을 최장 2년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조약 개정안 합의는 유럽인들의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례없는 부채위기로 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일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결국 국경간 이동을 제한하도록 솅겐 조약 적용 중단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채위기가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관용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 '똘레랑스'로 유명한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에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정작 자신도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공개석상에서 이민자들을 향해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일자리는 각자 나라로 가서 찾으라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파리 사립 에꼴 꺄몽도에서 실내 디자인을 공부하는 있는 김지현(31·여)씨는 최근 유학 생활 조건이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들어 유학 생활을 계속하기 위한 체류증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발급까지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9월에 신청하면 연말이나 연초에 나오던 체류증이 이제는 이듬해 봄이나 돼야 발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나마 사르코지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고 프랑수아 올랑드가 당선된 것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과 입장이 다른 보수적 성향의 부유층에서는 올랑드에 대한 불만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근 파리의 부자 동네인 6구, 16구 등에서는 부유층이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이의를 제기해 논란이 불거졌다.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면 저소득 계층이나 이민자들이 동네에 유입돼 구역 내 범죄나 폭력이 증가할 수 있다며 부유층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이민자 수는 약 11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0%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매년 18만명의 새로운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진 남유럽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경기가 나은 프랑스로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 통계청(NIE)은 지난해 말 출산율이 줄고 있는데다 이민자 유입보다 유출이 더 많다며 2020년까지 인구 감소가 지속돼 2021년 인구 수는 현재보다 약 50만명 줄어든 4550만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르코지 정권 시절이었던 지난달 초 클로드 게앙 프랑스 내무장관은 올해 4만5000명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민자에 대한 불만은 부채위기가 한창인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페인이나 그리스에서는 중국인 이민자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마드리드 솔 광장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호세 마르티씨는 "최근 마드리드에서 잡화점이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리스에서는 중심가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옷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스 국민들 사이에서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이 높았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실업률은 유로존 17개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지난 2월 기준으로 21.7%이고, 스페인의 4월 실업률은 24.3%로 집계됐다. 두 나라 모두 EU 전체 평균 실업률인 11%의 2배 수준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청년층 실업률이다. 그리스의 경우 25세 이하 청년층 실업률이 2월 기준으로 무려 52.7%나 된다. 스페인의 4월 청년 실업률도 51.5%였다. 청년 둘 중 한명 이상이 실업자이니 정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채위기 극복을 위해 단행한 공무원 감원, 최저임금 삭감 등으로 대량 양산된 실업자는 사회분열의 '뇌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자리는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이민자에 대한 불만은 높아지고 이는 사회불안과 정치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의 아테네 시내에서 만난 엘리아스 데오토글루씨는 "오는 17일 총선에서 좌파든 우파든 누가 승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유로에 잔류하느냐 아니냐도 아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아테네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그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가두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앞을 무심히 지나가 버렸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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