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파괴…콘텐츠 부실 우려도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이명박 대통령의 올해 업무보고가 지난주 끝났다.

올해 업무보고가 여느 때와 달랐던 부분은 젊은 사무관들이 직접 발표를 맡는 등 형식에 변화를 줬다는 점이다. 각 부처별로 지난해 무슨 일을 했고 올해 또 어떤 일을 해나갈지가 주된 관심사였다면 올해는 어느 부처가 어떤 식으로 발표를 했는지가 주목을 끌 정도였다.


올해 처음 시도한 방식이었음에도 각 부처마다 업무보고 때 나온 발언들은 당돌함으로 먼저 주목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 한 직원은 같이 참석한 장·차관이 들으라는듯 대통령에게 "책임지겠으니 나를 믿고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이 사무관은 "농업 특성상 자금 지원이 필요한데 과거처럼 무조건 지원해 주는 보조금 방식 보다는 융자금 방식으로 가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5년차 사무관의 당찬 발언에 참석자들은 귀를 쫑긋하며 놀랐다는 후문이다.


지경부의 한 사무관 역시 자기 부처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태블릿PC를 통해 보고받는데 여전히 실·국장은 대면보고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제처의 한 여성 사무관은 자신이 결혼하지 못한 점을 서두에 들며 업무가 과중되고 있음에도 직원수를 늘려주지 못한 점을 꼬집기도 했다.


각 부처별 현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의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이다. 직언(直言)이니 만큼 불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정책의 최고 결정권자가 무릎을 탁 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업무보고와 달리 자리 배치도 크게 바꿨다. 대통령이 앞에 앉고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대통령을 보고 앉는 게 아니라 참석자들이 둥글게 배치되고 그 가운데 대통령이 자리를 잡는 형태의 업무보고도 있었다. 대통령과 각 부처 장·차관 실무자, 그외에 다른 참석자들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배치다.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같은 보고가 자칫 형식에 치우쳐 국민을 위한 공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본질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이란 사전적으로 국민에 봉사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이지 행정수반과 충성관계로 얽혀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대통령과 공무원간 관계는 과거의 군주·신하간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통령에게 튀는 업무보고를 했다고 국정운영이 튈 수 있다고 쉬이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번 업무보고에 대해 현장형·소통형이라고 평했다. 대통령이 직접 업무현장을 찾아가 젊은 실무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토론이 주를 이루고 격식을 파괴한 점도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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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에 시행되는 업무보고는 한해 국정운영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대통령이 정책을 만들어 내는 실무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진 이번 업무보고가 올해가 끝날 때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더 주목받는 이유다.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한 사무관은 "대통령으로서 얻은 것과 잃은 게 무엇이냐"고 직접 물었다.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만 돌아볼 게 아니라 잃은 게 없었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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