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덕훈 EBS 사장 "사교육 필요 없도록 하겠다"
수능 연계교재 가격 '국정교과서 수준'으로 낮추겠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시골소년이 성장해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위한 희망이 됐다. 곽덕훈 EBS사장의 이야기이다. 시골에서 홀로 공부하면서 그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공부는 결국 혼자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EBS가 혼자 공부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 '교육 중심'을 선언한 곽 사장을 만나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교육방송공사로서 EBS의 사회적 역할은?
9월 모의평가를 이틀 앞둔 지난 30일. 서울 도곡동 본사에서 만난 곽덕훈 사장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박탈감이 얼마나 큰 지 잘 안다"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냈다. EBS를 통해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 아이들에게까지 양질의 교육서비스가 제공되는 오늘날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익산까지 기차로 1시간 가량 통학해야 했다. 등ㆍ하교 자체가 힘든 나날을 보내던 차에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같은 반 학생 집에 함께 살도록 도와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남의 집에 입주해 먹고 자며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의 사촌형이 놀러와 시험문제를 풀어보게 하더니 '이 정도 실력이면 서울에 가도 되겠다'는 한 마디 칭찬을 던졌다. 그 순간 그는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는 서울행을 결심하게 됐다. 그저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벽에다가 고무줄 묶은 다음, 그 고무줄을 목에 걸어놓고 공부했다. 졸지 않기 위해서 동원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서울에 전학을 오게 됐고,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곽 사장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거쳐 2009년 EBS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EBS사장에 취임한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장과의 대화'코너에 올라오는 글들을 살피고 직접 댓글도 달고 있다"고 밝혔다. 홈페이지에는 'EBS가 아니면 이런 우수한 선생님들의 강의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냐'며 감사하다는 의견들이 많이 올라온다.
곽 사장은 "사교육도 받을 수 없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건 자연스럽게 교육격차 해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교육혜택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EBS가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교육서비스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EBS의 존재이유"라고 말했다.
◆'70%연계=쉬운 수능' 정책기조는 EBS에게 어떤 의미인가?
올해 수능에서도 'EBS교재 70% 연계'정책이 유지되면서 교사들이 기계적으로 EBS교재로 가르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이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와 관련해 곽 사장은 "연계 정책을 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국민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더 좋은 솔루션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콘텐츠 질이 떨어지는 건 문제'라고 강조했다. 곽 사장은 "EBS의 역할은 최고 품질의 강의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부분을 공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를 비롯한 EBS 전 구성원들이 '사교육 없이 EBS만으로 수능 대비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교재와 강좌를 제작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EBS를 활용하는 학생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7월까지의 강의 이용 건수는 총 1억5529만797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 증가했고, EBSi 사이트의 월 평균 점유율도 45%로 지난해에 비해 12% 이상 상승했다.
학생들의 맞춤식 학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콘텐츠의 질뿐만 아니라 양도 확대하고 있다. 연계 강좌에 총 1607편의 심화분석 강의를 신설해 고난도 문항과 변형 출제 문항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고, 개념학습을 충실히 하도록 하기 위해 개념원리 강의를 강화하여 제공하고 있다.
또 저자 직강 개념 강의 및 협력 교재 강의 등을 총 4411편으로 편성하고 EBS 교재의 중요 부분을 다룬 요약 강의를 제공해 또 다른 사교육 발생을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상위권 및 하위권 대상 강좌 확충 등 수준별 강좌를 확대 편성하여 수험생의 수준에 맞는 강좌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대학별고사 대비 강좌 또한 확대 제공하여 실질적인 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곽 사장은 "다만 입학사정관제와 수능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정립해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입학사정관제도가 정착해가는 과도기로 향후 수능은 자격시험의 성격을 띄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60여권의 수능 연계교재는 '국정교과서' 수준으로 '가격' 낮추겠다
정부의 '수능 70% 연계'정책과 맞물려 60여권의 수능연계 교재가 선정되자, 교재값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이에 대해 곽 사장은 "원칙적으로는 EBS로 공부하는 데 교재가격 부담은 주지 않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원 조달에 있다. EBS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임에도 자체 수익 비율이 70%, 나머지 30%만이 수신료와 방송통신발전기금 등 외부 수익으로 충당된다. 2500원 수준에 묶여있는 TV수신료 가운데 2.8%에 해당하는 159억 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는 EBS 전체 재원 중 6.2%에 불과해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곽 사장은 "EBS가 공영방송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출판 부문이 전체 매출액의 40%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재원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EBS가 출판보다는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재원구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쪽에서도 수능 연계 교재 가격을 낮추도록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EBS교재 가격이 시중 학습지의 55~58%수준이지만, 정부로부터 충분히 지원이 된다면 국정교과서 수준으로까지 낮추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격을 낮추는 교재 범위는 수능 연계 교재로 한정했다.
EBS교재 70% 연계 정책의 도입으로 대학진학을 앞둔 수험생들은 학원을 다니는 것은 선택이지만 EBS교재를 보는 것은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수능 연계 교재는 이미 준교과서 수준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교과서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곽 사장은 "공적지원을 전제로 한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대담=황석연 사회문화부장
정리=이상미 기자 ysm1250@
사진=이재문 기자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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