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기부=회사 돈'아닌 2세대형 나눔 기부시대 개막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그리고 'IT황제' 빌 게이츠.


19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를 호령했고 지금도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기업인 앞에는 이같이 대표 별칭이 항상 따라 붙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철광왕, 석유왕 등보다 전 세계인들에게 훨씬 친숙한 공통된 수식어가 이들을 교집합으로 묶는다. 바로 '기부왕'이다.


철강왕 카네기는 철도와 운송, 석유 사업에 투자해 큰 돈을 번 후 인생의 후반부를 사회사업에 바쳤다. 뉴욕의 카네기홀을 비롯해 카네기 공대와 카네기 재단 등을 설립했고 전 세계에 2500개 이상의 도서관 건립을 지원했다.

카네기는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1911년 1억3500만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카네기 재단을 사회공헌의 모태로 삼았다. 이후 카네기가의 사회적 책임 실천은 이벤트성이 아니라 무려 100년동안 진화하며 어려운 이웃 옆에는 '카네기'가 있다는 무형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


록펠러 가문은 시카고 대학과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기아근절과 교육 등에 많은 공헌을 해오고 있다.


록펠러가는 3대에 접어들며 정경유착이 드러나 4대에는 가문이 뿔뿔이 흩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할렘가 재개발이나 폐광촌 개발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을 자손들이 지속했고 현재 5대에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무담보 신용금융사업 등을 전개, '록펠러' 가문의 명예를 '석유왕'에서 '기부왕'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이들이 록펠러 재단과 센터, 의학연구소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 금액만 2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후손들이 워낙 다양한 기부활동을 하다 보니 금액 집계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다.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기부금 액수를 기준으로 선정된 미국의 '10대 기부왕'을 보더라도 미국 10대 부호 대부분이 개인, 또는 가족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워런 버핏(406억달러)과 빌 게이츠(262억달러), 조지 소로스(22억달러) 등 성공한 기업인ㆍ투자자 개인 뿐 아니라 힐튼 호텔의 공동 회장 중 한명인 윌리엄 배런 힐튼과 월 마트 창업자 가족인 월톤 패밀리(14억달러) 등 가문의 이름을 건 기부가 많이 포함된 점은 사회공헌의 지속가능성과 발전가능성을 한껏 고무시키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한 때 자본주의시대의 '추악'한 기업인으로 지목을 받았을 정도로 혹독한 역사적 평가가 뒤따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기부 천사'로 이들의 가문을 주목하도록 만든 힘은 바로 기부를 기업의 문화로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온 노력 덕분이다.


우리나라도 재계 총수들의 사재출연을 통한 부(富)의 사회환원은 1975년 동국제강 장경호 회장을 시작으로 최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5000억원 출연까지 그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 LG, 현대, 롯데, CJ 등의 재벌가를 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연상하는 이는 드물다.


아직까지 '재계의 기부=회삿돈'으로 인식되고 있는데다 경영 및 상속 과정에서 맞부딪힌 사회, 도덕적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여론 전환용 카드로 사용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A그룹 관계자는 "총수가 출연한 사회공헌재단이 있지만 그 활동이 그룹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는 미약하다"며 "특히, 계열사별로 진행하는 각종 봉사활동을 아무리 해 봐야 그룹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키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사재 출연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재벌가문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 대한 자발적 참여가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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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사회적 압력에 의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진행된 기부를 '1세대형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지칭한다면 이제 소프트웨어 IT시대로 접어들어서는 자발적 참여로 부의 사회환원을 실천하고, 가문의 명예를 '산업화의 주역'보다 '기부와 나눔'에서 찾으려는 '2세대형'이 개막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록펠러 가문 5대손 스티븐 록펠러는 20대 이후 사회공헌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사회공헌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그의 기부와 사회공헌활동은 자기정체성을 위해 가문의 과거를 연구한 후 부터 본격화됐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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