魂이 없는 보석은 돌이다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벽면 가득 펼쳐진 미디어 아트가 시선을 잡아 끈다. 흑백의 드로잉에서 실제 장신구와 흡사한 컬러 스케치까지, 천천히 변화하는 이미지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이내 곡선미가 강조된 테이블과 예술적인 색감이 돋보이는 거울을 차례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야 금속 공예와 보석 디자인을 접목한 진짜 '보석'과 만날 수 있다. 유려한 선이 마치 흘러내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장신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금의 물성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여러 종류의 보석이 혼재하며 빛과 색의 향연을 만들어내는 보석 장신구에 이르러서야 '장신구, 색을 입다'라는 전시의 타이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3일까지 호림아트센터 JNB 갤러리에서 열리는 홍수원의 개인전 '장신구, 색을 입다'는 금속 공예를 전공하고 공예와 주얼리 디자인을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의 고민을 담아낸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얼리 디자인에 대해 주목해 왔죠. 초현실주의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도 주얼리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석은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등 재화적인 가치로만 여겨지고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주얼리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보고 싶었어요."
"제 작품에서 보석은 회화의 안료와도 같아요. 색도, 채도, 명도, 크기, 커팅이 각기 다른 보석은 저의 조형 언어를 표현하는 소재라는 점에서 볼 때 값비싼 '돌'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돌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보석이라는 소재와 그를 세팅하는 작업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장신구의 새로운 조형 가능성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 각각의 보석은 '주제'가 아니라 '소재'로 사용되며 유기적인 형태를 이룬다. 거울이나 테이블, 의자 등에도 보석을 접목한 것도 '조형 가능성'에 의미를 둔 장르의 수평적 확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통섭'이 화두가 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독자성을 보이고 있는 금속공예가 이제는 벽을 허물고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상업적인 시도를 하려는 작가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발상은 홍수원 작가의 아이덴티티에서 비롯되었다. 금속 공예를 전공해 일품적인 성향의 작품을 만들어오던 작가는 1995년 모네 주얼리 디자인 공모전 입상, 반클리프앤아펠 디자인 공모전 입상 등을 통해 해외에서 먼저 주얼리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2004년도에 산업자원부와 한국 디자인 진흥원이 주관한 차세대 디자인리더 육성사업 1기 선도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신구 브랜드 'One of a kind jewelry'를 론칭하며 상업적인 성향을 띄는 주얼리 디자인으로 영역을 확장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시장성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다. 미국 뉴욕, 홍콩, 일본의 도쿄와 교토 등을 누비며 국제 주얼리 페어에서 호응을 얻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보석 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경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공예가 설 자리가 없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기성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장인의 혼'에 높은 가치를 매기죠. 보석 장신구를 비롯한 공예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나래(전시칼럼니스트)·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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