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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vs책] 이랬더니 막장서도 살았다 "THE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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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THE 33'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 이원경 옮김 / 월드 김영사 / 1만2000원

리더십은 '밥'에서 나온다. 바로 옆에서 누가 권총을 쥐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따라서 이 원칙은 기업, 학교, 정부에 모두 적용된다. 칠레 오지의 지하 700m 갱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리오 세풀베다는 다른 32명의 광부들과 산호세 광산에 매몰되자 우선 먹을 것부터 찾았다. 오일 필터 뚜껑에 참치와 물을 넣고 묽은 수프를 만들어 동료들을 먹였다. 훗날 구출된 광부들은 이 사건으로 세풀베다가 '대장' 자리를 차지했다고 기억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나단 프랭클린이 펴낸 'THE 33'(월드 김영사)은 '현명한 작업반장 우르수아'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자처한 우르수아'같은 '우르수아 리더십'을 언론과 구조대가 조작해난 환상이라고 말한다. 대신 '야전 사령관'같은 세풀베다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어떻게 절망과 분열에 빠진 광부들을 담합시켰는지 보여준다. 구조대 신분증을 얻어 구출현장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짜 얘기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막장에서 광부들은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토론과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다. 세풀베다는 여기서 갈등을 조율하는 비공식적 중재자 역할을 했다. 광부들은 막장에 갇힌 69일간 그를 리더로 따르면서 참치 한 숫가락, 우유나 주스 반잔, 과자 하나 같은 식량 관리를 맡겼다. 가장 어린 19살의 광부 지미 산체스는 구조된 뒤 "남은 식량을 어떻게 나눠 먹느냐를 투표에 붙이도록 하는 등 세풀베다가 절망에 빠진 광부들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세풀베다는 그렇다고 우르수아를 매도하지 않았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우르수아의 리더십은 당시 상황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산호세 광산에 부임한지 3개월도 채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우르수아는 광부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지만, 세풀베다는 우르수아의 권위를 존종했다. 작업반장 자리에서 몰아내지 않고 공동 통치자로 삼았다. 우르수아는 자신의 한계를 지켰다.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흥분 속에서도 사내들끼리의 질서는 지켜졌다.
세풀베다는 광부들을 세 팀 나눠 번갈아 가며 여덟 시간씩 일하도록 했다. 의사, 시인, 설교자, 공식 기록자도 뒀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바로 그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해설에서 "위기에서는 정직한 절망이 필요하다. 정직한 절망이라야 간절한 희망을 갈망하거나 열망할 수 있다"고 원동력을 분석했다.

오히려 혼란은 구조대와 연락이 되면서부터 찾아왔다. 날마다 120 리터의 물, 차고 맑은 공기, 텔레비전, 잡지가 배급되자 광부들은 늘어지고, 서로 질투 했으며, 마리화나를 몰래 들여와 피웠다. 저자는 "지루함과 비교적 안전하다는 느낌이 집단의 화합을 위협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까닭에 모 대기업은 주기적으로 '위기론'을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식인 공포에 대해 저자는 한심하다는 태도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당혹스러웠다. 시체도 없고, 악마도 없고, 잠시나마 전 세계 독자의 시선을 끌도록 윤색할 참혹한 사건도 없었다" 오직, 생존을 보장해야한다는 리더십 철칙만이 있었을 뿐이다.
[BOOK:책vs책] 이랬더니 막장서도 살았다 "THE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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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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