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돼도 해가 떨어지지 않는 백야의 나라인 줄도 모르고 간 페테스부르크. 베니스처럼 얽히고 섥히진 않았지만 네바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과 강남이 나뉘어 서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반듯하게 연결된 수로와 물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계획도시라는 점이 다른 느낌을 줬다. 휴가 이전에 일을 끝내느라 바쁜 탓에 전혀 도시의 특징에 대해 알지 못한채 도착한 셈이다.
건설과 건축에 관심이 높은 나는 시내를 구경하며 한동안 레닌그라드였던 도시 이름이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세인트 페테스부르크로 다시 돌아간 사연을 찾아봤다. 고대 도시를 배제하고 늪지대에 죽을 힘을 다해 만든 현대적 도시의 계획자인 피테 대제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터 대제는 1672년부터 1725년까지 생존했다. 그는 당시 후진국에 속한 러시아를 개혁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황야의 늪지대에 도시를 건설했다. 유럽의 새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유럽에 가깝게 지으면서 많은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등을 불러들였다. 일부러 늪지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겠으나 지정학적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스웨덴에서 침투하는 적을 잘 감시할 수 있는 데다 유럽과 러시아에 모두 가까워 교통, 국방, 무역, 문화, 정치적인 다양한 목적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피터 대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존재하는 특권의식을 향유하기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듯 싶다. 그것이 상식과 순리를 따르지 않는 차원이었는지, 개인적 성품이나 공정(fairness) 의식의 발로였는지, 혹은 사회발전에 필요한 절박함에서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창조적 상상력은 결과적으로 국제적 도시의 건설과 러시아의 개방화·국제화에 성공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도시 이름의 복귀가 아닐까 한다. 시민들은 투표로 도시 이름을 레닌그라드에서 당초 피터 대제가 건설한 당시 이름인 페테스부르크로 바꿨다.
힐러리 앤드 톰슨 파트너스 대표(hjthomp@hotmail.com)
*김희정 씨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년간 인턴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L그룹에 이어 외국계 기업의 법률 전문가로 활동해오다, 얼마 전 '힐러리 앤트 톰슨 파트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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