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특별기획] 2009, 방황하는 '이퇴백'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20대 그래도 희망을 쏜다]<4> '이태백' NO, 이젠 '이퇴백'
스스로 퇴직하는 백수 늘어…
오피스워커만이 아닌 자신의 적성을 찾는 20대


◇바야흐로 '이퇴백' 시대 = 직장 3년차 김모(29ㆍ남)씨. 남들은 첫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나이에 벌써 이직을 경험했다. '돈도 돈이지만 내 적성을 찾지도, 능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이직을 단행한 것.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위 사람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배부른 소리'한다"며 시샘도 보내지만 김씨에게는 출근 시간이 짜증날 뿐이다.

결국 그는 오는 여름께 유학을 떠날 생각으로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지만 서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 한 번 더 도전해볼 생각이다.

점차 심화되는 취업한파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태백도 옛말이다. '이퇴백'이라는 신조어가 20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퇴백은 '20대에 스스로 퇴직한 백수'란 뜻으로, 취업난이 걱정돼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치 않고 일단 취업한 뒤 직장에 만족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 퇴직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취업난이 심각해 인턴 모집에 수천명씩 몰리는 지금의 실상을 감안하면 생소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갈팡질팡' 고민만 = 이퇴백들 가운데 일부는 김씨처럼 퇴직 후 유학을 떠나거나 꿈을 좇아 새로운 길로 나가지만 대부분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더구나 지금의 20대는 처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대학 선택에서부터 적성과 꿈보다는 취업 가능성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경우가 많아 현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찾아 다른 일을 시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불황에 따른 취업난이 마음에 걸리는 건 당연한 일.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권모(28ㆍ여)씨도 비슷하다. 임용고시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번듯한 교육 공무원이 됐지만 날이 갈수록 우울하다. 교사직이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불황에 따른 사기업 취업자들의 '고용불안' 걱정을 보며 안정적인 교사직을 택해 묵묵히 공부했으나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와 사회의 시선이 권씨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중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범대를 나왔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없고 비인기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 학원 취직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아무런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20대도 종종 있다. 40~50대 기성세대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20대들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직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님께 다시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외무고시를 4년간 준비했던 안모(29ㆍ남)씨.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중소기업 해외담당부서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취업 3개월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호주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매일 밤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고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지내는 중이다. 생활비는 대부분 부모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자아실현이 중요..."서두르지 마라!" = 이처럼 20대 후반의 직장인과 이퇴백들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일부에서는 나약한 20대라며 혀를 차고 다른 쪽에서는 용기 있는 20대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대들에게 있어 '직업'이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종사해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있어 직업은 무엇보다 '자아실현'의 중요한 계기다. '직업'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직업'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 결국 20대들에게 '직업'이란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불황에 따른 취업난에 어깨를 움츠린 채 '일단 취업하고 보자'며 일을 시작했던 김씨와 권씨, 그리고 안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즐겁지가 않다"고 호소한다. 좀처럼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아실현 통로를 발견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일까? "취업준비생들에겐 힘빠지는 소리일 수 있다"고 운을 뗀 김씨는 "1~2년 백수로 지내는 게 두려워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아무 일'에나 뛰어드는 건 반대"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금 좀 불안해도 적성이나 꿈을 무시하면 안 된다. 나중에 후회하고 돌아가는 길이나 지금 궁여지책으로 일에 뛰어드는 길이나 시간을 잡아먹긴 마찬가지"라고 당부한다

권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언제까지고 경기가 나쁘리란 법은 없다"면서 "불황을 의식해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만 찾거나 일단 어디든 들어가고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고민해보기 바란다"고 충고한다.

◇"구체적인 꿈을 갖고 차별화 해야" = 20대 후반을 목전에 둔 대학 3학년생 정모(26ㆍ남)씨는 이미 일 년 전에 작가가 됐다. 군 제대 뒤 복학도 미룬 채 무작정 떠난 해외 여행길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작가의 책처럼 대단한 작품을 써낸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반응이 괜찮아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고정으로 라디오에도 출연한다.

취업난에 애태우는 선배들을 눈앞에서 봐야하는 그에게 때로는 '토익점수 안 만드냐'는 핀잔도 따라온다. 핀잔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직"이다. 정씨는 "지금이 그렇게 극심한 불황이라면, 토익 몇 점 더 받고 자격증 하나 더 따는 게 취업에 그리 큰 도움이 될까 싶다"고 말한다.

그는 또 "기업에 들어가서 '오피스 워커'가 되는 것만이 취업은 아니지 않냐"며 "기업의 일자리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미치는 마당에 지푸라기 잡기로 취업공고만 뒤지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실 속에서 또다른 재미와 가능성을 찾는 이도 있다. 원양어선 정비사로 근무하고 있는 마모씨(27ㆍ남)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일찌감치 해양대에 진학해 같은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어려서부터 집안형편을 걱정해온 터라 꿈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 답답한 선실 바닥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음악. 몇날 며칠 해조차 볼 수 없어 힘들고 지칠 때 그에게 힘을 준 음악을 자신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틈틈이 악보 공부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시커먼 배 밑바닥을 벗어나 꿈을 이룰 날을 생각하며 그는 오늘도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음악삼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취업지원을 담당하는 A교수는 "소위 '스펙'이라는 게 조금 떨어져도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차별화 된 노력을 꾸준히 해온 학생이나 졸업생들은 좀 늦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곧잘 선택한다"며 "문제는 본인의 마음가짐"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조해수 기자 chs900@asiae.co.kr

특별취재팀-박충훈 김효진 안혜신 오현길 임혜선 박형수 박소연 나주석 김경진 김철현 조해수 김보경 이솔 김준형 김현준 최대열 오진희 기자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이슈 PICK

  •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요구안 의결…尹, 거부권 가닥 김호중 "거짓이 더 큰 거짓 낳아…수일 내 자진 출석" 심경고백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국내이슈

  • "눈물 참기 어려웠어요"…세계 첫 3D프린팅 드레스 입은 신부 이란당국 “대통령 사망 확인”…중동 긴장 고조될 듯(종합)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해외이슈

  • [포토] 중견기업 일자리박람회 [포토] 검찰 출두하는 날 추가 고발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포토PICK

  • 기아 EV6, 獨 비교평가서 폭스바겐 ID.5 제쳤다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이란 대통령 사망에 '이란 핵합의' 재추진 안갯속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