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은 지난 14일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자평했다. "에너지 패권 강화 정책의 결과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며 "중동산 원유 공급이 차단된 국가들에게 안정적이고 풍부한 에너지를 공급할 준비가 됐다"고도 밝혔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24일까지 일주일간 자국 원유 수출이 하루 644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연합뉴스가 19일 보도한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비중동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고 수송 루트를 다원화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미국산 경질유는 우리 정유사가 중동산 중질유와 섞어 쓰기에 가장 편한 유종이라고 하더라"며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미국 비중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원유는 한국의 수입 비중에서 지난해 16%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중 3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김 장관의 말처럼 미국산 원유는 경질유다. 셰일오일도 대체로 경질유에 속한다.
원유의 종류는 미국석유협회(API)의 API도에 따라 나눈다. API도는 원유의 비중이 낮을수록 커진다. 원유의 API도가 34 이상이면 경질유(輕質油), 30~33은 중질유(中質油), 29 이하면 중질유(重質油)로 분류한다.
국제 원유 가격 변동을 설명할 때 많이 언급되는 WTI는 미국 서부 텍사스 중간지역(West Texas Intermediate)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약어다. WTI를 '서부텍사스산중질유'로 잘못 표기한 글이 보이는데, WTI는 중질유(重質油)도 아니고 중질유(中質油)도 아닌 경질유다. WTI의 API도는 40이다.
원유가 중질유인지 경질유인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정유업체의 설비는 중질유에 맞춰 설계됐고 운영된다. 중질유는 무겁고 점성이 높으며 황 함량이 많다. 경질유는 가볍고 황이 적다. 한국 정유 공정에 중질유를 주로 투입하면서 경질유를 일부 섞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운영 효율을 고려할 때 그 비중을 지금보다 크게, 예컨대 30%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만약 그렇게 비중을 키운다면 정제해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달라진다. 경질유에서는 휘발유가 많이 나오는 반면, 중질유에서만큼 항공유와 경유가 생산되지 않고, 고부가 윤활기유를 제조하기 어려우며, 아스팔트도 만들 수 없다. 또 다른 요인은 운송 비용이다. 초대형유조선(VLCC)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지 못한다. 미국산 원유를 실은 VLCC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해, 운송 기간과 비용이 중동발 VLCC에 비해 두 배에 이른다.
한편, 백악관 보도자료와 김 장관의 발언 중 "세계 최대 원유(에너지) 수출국인 미국"은 사실과 다르다. 세계 원유 수출 규모는 사우디, 러시아, 미국 순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로서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자국 내 유가와 지지율 측면에서 불리하다.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래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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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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