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한은 총재가 했다는 그 '정치적' 발언
'경제적' 메시지에 붙은 '정치적' 발언 딱지
정치·경제 상호작용 속 의미 그 자체로 봐야
"정치 현안에 의견 개진, 정치 관여로 오해할 수 있다." "스스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화를 부른 게 아닌가."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 총재가 한국은행법에 명시된 한은의 중립성 조항을 흔드는 '정치적'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지적으로, 이 총재는 그때마다 오히려 "굉장히 '경제적'인 메시지였다"고 선을 그었다.
논란은 지난해 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몫 헌법재판소 재판관 2명을 임명한 직후 시작됐다. 최 대행 결정에 일부 국무위원이 반발하고 나선 데 이어 일각에서 최 대행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이 총재는 "고민 좀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무슨 얘길까. 당시는 비상계엄 사태 후 해외 투자자 등 국제사회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가 지도부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까지 미친 상황이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이 국가 신용등급에 파생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총재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치 불안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우리 경제 시스템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대외 메시지라고 봤다.
같은 날 신년사를 통해 발언 취지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 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용등급이란 올라가긴 어려워도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기 어렵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포함한 경제 시스템 전반이 정치적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요는 최 대행 결정에 대해 비판을 하더라도 대외 신뢰도와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에 대한 무게감을 갖고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총재는 이후에도 해당 발언에 대해 "경제에 핵심이 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중앙은행 총재가 헌재 재판관 임명에 관해 얘기한 정치적 발언'으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달 1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기준금리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에선 추가경정예산(추경)의 필요성과 적정 규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또 한 번 '정치적 발언' 후폭풍을 맞았다. 한은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 전망치(0.5%)와 실제 성장률(0.1%·속보치)의 차이인 0.4%포인트 중 0.2%포인트가 비상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에 의한 내수 부진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0.2%를 보완할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편성이 결정되면 경제 전망에 바로 반영해 우리 경제 기초체력이 우려보다 탄탄함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빠를수록 좋다'고도 했다. 이는 기준금리 결정 다음 주인 지난달 22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한은 방문을 불러왔다. 추경이 필요하다는 이 총재의 발언이 '월권적 재정 확대 요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 지난 18일 기재위 전체 회의. 이 총재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답변을 이어갔으나, 그간의 '정치적 발언' 시각에서 보면 이 역시 '문제적 언급'이었다. 이 총재는 추경에 관해선 15조~20조원이 적절하다고 봤고, 35조원 규모로 커지면 이듬해 그 이상 투입이 안 될 경우 성장률에 음(-)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었다. 35조원 규모 추경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것이다. 역시 민주당이 주장해온 전 국민 민생회복 지원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현금을 나눠주는 건 전산 체제 등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을 때 하는 방식이며, 추경을 통한 재정 지원은 최근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집중돼야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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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 총재의 발언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선 정치적인 것일까, 지극히 경제적인 것일까. 한 국가의 정치와 경제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상호작용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해석 여지가 있으면 경제적 의미가 크다고 판단해도 함구하고 마는 것이 과연 중앙은행 총재의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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