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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탕평'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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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탕평'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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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입구 왼편에는 비각(碑閣. 비석을 세우고 비바람 등을 막기 위해 만든 건물)이 있다. 비각 안에 있는 것은 ‘탕평비(蕩平碑)’다. 정치를 하거나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탕평비를 세운 사람은 조선의 왕 중 가장 길게 왕위에 있었던(52년) 영조다. 그가 즉위한 것은 1724년 8월 30일. 왕이 되기 전부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을 경험한 그는 당쟁 혁파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재위 4개월여 만인 1725년 1월, 붕당을 조성하는 자는 국정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며 ‘탕평(蕩平. 당파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것)’을 선언한다. 그의 재위 기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탕평’의 시작이었다.

“~ 붕당(朋黨)의 폐단이 요즈음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유학 내에서 시비가 일어나더니 지금은 다른 편의 사람을 모조리 역당(逆黨)으로 몰고 있다. 붕당의 폐해가 점점 심하여 각각 원수를 이루어서 죽이려는 것으로 한계를 삼아왔다. 아! 마음 아프다. 어찌하여 반드시 한편을 다 죽인 뒤에야 왕법을 펼 수 있겠는가 ~”라며 붕당을 혁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하교를 내리기도 했다.


영조가 탕평비를 세운 것은 1742년(영조 18년)이다. 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周而不比乃君子之公心(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 두루 사귀면서도 편을 짓지 않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고) 比而不周寔小人之私意’(비이불주, 식소인지사의. 두루 사귀지 않으며 편을 짓는 것이 소인의 마음이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강경파들을 국정에서 배제했다. 대신 ‘완론(緩論. 온건파 인사)’을 중용했다. 당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영조는 '탕평'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켰다. 이것은 정조의 '원칙 있는 탕평'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지금 우리 정치는 붕당의 폐해가 극심했던 조선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를 하고 있다. 여야가 도토리 키재기다. 파당으로 갈라져 우리 편이면 잘못이 있더라고 눈감고 옹호하며 감싼다. 반대로 상대편이면 작은 티끌만 있어도 눈을 크게 뜨고 잡아먹을 듯 크게 소리친다. 도의(道義.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하는 도리)를 말하는 이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내 편 사람만 요직에 등용한다. 공공연하게 ‘친윤(친 윤석열)’ ‘친명(친 이재명)’을 거론한다. 온건파들의 입지는 줄어들고 강경파들이 쥐고 흔든다. 정치권에서 ‘탕평’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단독 개원, 단독 처리…. 정치권에선 ‘초유’의 사태가 이어진다.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특별검사 법안, 쟁점 법안, 정기 국회, 예산 국회로 이어지는 하반기 정국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당쟁이 극한으로 가고 있으니 의회민주주의의 위기이자 국가의 위기다. 지금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정도다. 국민이 무슨 죄가 있기에 언제까지 이 극단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보아야 하는가. 탕평비를 마주하니 드는 생각이다. '탕평'이 없는 정치가 미래를 열 수는 없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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