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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된 피폭]④학계까지 '정권 눈치'…"공개 검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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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 부정하던 전문가들…정권 바뀌자 '쉿'
서균렬·이수곤 "유출 가능성 심각히 우려"
재개되는 전수조사에 "정부, 전부 공개해야"

편집자주한반도를 안보 불안에 몰아넣는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핵실험장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검증하고 대비하는 건 국가의 몫이다. 북핵은 안보를 넘어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조명하고 정부의 과제를 모색한다.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놓고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견을 제시해야 할 학계마저 정권의 '코드'를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를 통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이 안전하다는 의견을 냈던 여러 전문가는 '언급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모두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통일부가 예고한 전수조사가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균렬 "北 방사성 물질 유출, 남한에 도달 가능성"
북한 인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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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을 지낸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으로부터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극미량이라도 남한 상수원 어딘가에 도달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서 교수는 원전의 위험성과 관련해서 학계에서 홀로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온 전문가다.

서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됐을 수 있다"며 "정부가 위험성을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모른 채 내버려 두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 교수는 특히 2018년 피폭 검사에 참여했던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가운데 무려 1386mGy에 달하는 수치가 검출된 여성을 주목했다. mGy(밀리그레이)라는 단위는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보여주는 '흡수선량'을 뜻하는데, 일상생활만 영위한다면 높아야 5mGy 수준의 분포를 보이며 CT 촬영으로 방사선을 쬐면 10~50mGy까지 오를 수 있다. 당시 통일부는 흡연력을 비롯한 교란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지만, 서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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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낮게 측정된 200~300mGy 해도 엄청난 수준인데, 1386mGy라는 건 깜짝 놀랄 만큼 굉장히 높은 수치"라며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수습하러 들어가서 1시간 이상 작업해야 1000mGy 정도 측정된다는 걸 비교해보라"고 지적했다. 특히 애초부터 일상적인 교란변수의 영향을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라는 설명이다. 교란변수 탓에 핵실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통일부의 설명과 정면 대치되는 것이다.

서 교수는 오히려 해당 여성이 1~3차 핵실험만 경험했다는 점도 우려했다. 북한의 1~3차 핵실험은 사실상 '불발탄'이라 할 정도로 낮게 평가되는데, 위력이 약한 핵실험만 겪고도 상당한 피폭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제대로 된 핵분열에 성공하지 못하면 핵불발, 즉 핵분열을 마치지 못한 물질들이 그만큼 많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이것이 태풍과 장마, 수맥을 통해 내려가고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면, 현재로선 1386mGy라는 수치가 유일하게 성립 가능한 경로"라고 진단했다.


이수곤 "만탑산은 이미 균열 多…지하수 통제불능"
2018년 5월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핵실험장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다.

2018년 5월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핵실험장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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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를 통한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은 지질 전문가에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산사태를 비롯한 지질학 연구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이 화강암 지대라는 점을 주목했다. 이 전 교수는 1987년 영국에서 지질학과 토목공학을 융합전공할 당시 한국 화강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냈을 정도로 이 분야에 정통하다.


그는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을 구성하는 건 화강암, 즉 마그마가 굳어진 암석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다"며 "주목해야 할 건 균열의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남한의 화강암산 중에서는 인수봉이나 관악산을 예로 들 수 있다"며 "여기서 인수봉에 나무가 없이 민둥산인 건 그만큼 균열이 없다는 뜻인데, 관악산에 나무가 우거진 건 수직 절리(균열)가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숲이 울창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애초에 균열이 많은 '약한' 화강암 지대라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균열이 상당하기 때문에 나무가 우거진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그런 지역에서 핵실험을 한다면 당연히 암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오염된 지하수가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는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의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위력이 가장 컸던 6차 핵실험 뒤 잇따랐던 지진들은 지반 균열과 방사능 누출을 시사한다"며 "무서운 건 지하수다. 한 번 유출되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를 인용해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근거 없는 주장'이라 일축했던 건 대단히 편향적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해당 전문가는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 일대가 화강암이라서 단단하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균열이 많고 약한' 상태였다. 특히 핵폭발 직후 녹아내린 암석에 방사성 물질이 갇혀 안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핵실험을 오로지 한 번만 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고 서균렬 교수는 지적했다.


국제사회 우려…"방사능 파괴적 영향에 국경 없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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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문가 영역에서 정권에 따라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면, 이와 무관한 해외 전문가의 언급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북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지난 4년 동안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을 추적해온 결과를 담은 특별보고서를 전 세계에 동시 발간했는데,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측의 관련 질문에 "북한은 방사성 물질(핵종)을 숨기려고 노력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대기 방출을 제한하도록 집중했을 수 있지만, 물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흡한 안전 기준을 지적했다. 즉 방사성 물질의 대기 중 방출 경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수로에는 확실히 문제의 물질이 포함됐을 수 있다는 게 올브라이트 소장의 추정이다.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 반핵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ICAN)도 중대한 우려를 표했다. 알리시아 자크리 ICAN 정책담당관은 "지하에서 핵실험을 해도 공기 중으로 방사성 가스가 누출되고 지하수가 오염돼 노출된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며 "방사능의 파괴적인 영향은 국경도 경계도 없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된다"고 경고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문재인 정부는 국책 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를 인용해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부정했지만, 성립 불가능한 이론이라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라며 "통일부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민간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사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과학계부터 의학계까지 공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되, 국제적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상세한 검사 경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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