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18세기 말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서한집이다. 횔덜린은 낭만주의 정신의 중핵에 있는 문인일 뿐 아니라 헤겔과 셸링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독일 관념론의 발전을 이끈 사상가이다. 정신착란으로 생애 후반의 반평생 유폐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며, 생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에는 니체, 릴케, 하이데거, 아도르노, 벤야민 등이 그를 독일 현대 시의 선구자로 재평가했다. 서한집에는 그가 학창 시절부터 헤겔, 셸링, 실러, 괴테를 비롯해 친구와 연인, 가족에게 쓴 편지 121통에 더해, 부록으로 정신착란 발발 이후의 편지 여섯 통을 수록했다.

[책 한 모금] “순수한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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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요한 행복감이 언어로 옮겨져야만 한다면 그것은 고요한 행복감에게 언제나 죽음이기도 하다네. 나는 차라리 즐겁고 아름다운 평화 가운데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누구인지를 헤아리지 않은 채 어린아이처럼 그저 유랑한다네. 왜냐하면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어떤 사념도 완전히 붙들지 못하기 때문이지.

238쪽

순수한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네. 자네가 고귀한 것을 비천한 것 없이 나타내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부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 가장 부조리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네. 고귀한 것 자체는 그것이 표현에 이르는 한 그것이 생성되었던 운명의 색깔을 띄우기 마련이고, 아름다움은 그것이 현실 가운데 표현되는 한, 그것이 생성된 환경으로부터 자신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어떤 형식을 필연적으로 취하기 때문이네. 그리고 이 부자연스러운 형식은 그 형식을 필연적으로 부여했던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자연스러운 형식이 되는 것이네. (...) 그러므로 비천함 없이는 고상한 것이 표현될 수 없다네. 비천한 것이 이 세상에서 나에게 부딪쳐 올 때면,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하려 한다네. 즉, 너는 도공이 아교를 필요로 하듯이 비천함을 그처럼 필연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언제나 비천함을 받아들이고 내치지 말며 꺼리지 말라고 말일세.

287~288쪽


너는 나의 모든 불행의 뿌리를 알고 있느냐? 나는 나의 온 마음이 매달려 있는 예술을 위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로 오가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자주 진정으로 삶에 지치게 된단다. (...) 시인으로 길러졌던 많은 이들은 이미 죽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시인이 살 만한 기후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열 그루의 초목 가운데에서 한 그루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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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 서한집 |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 장영태 옮김 | ITTA | 568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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