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 불 지피는 野…대선 '젠더 이슈' 본격화
尹, 지난 7일 SNS에 "여가부 폐지" 한줄 공약
'이대남' 유권자로부터 폭발적 반응
"대선 후보치고는 비루" 진보 정당 중심 비판 나와
대선 2개월여 앞두고 20대 표심 구애하는 후보들
20대 男女 주요 관심사 '젠더 이슈'도 부상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쓴 문구다. 부연 설명 하나 없이 올라온 7개의 글자일 뿐이었으나, 온라인상에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글이 업로드된 지 약 1시간만에 좋아요 수가 7000개를 넘고, 댓글은 2400여개가 달린 것이다.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 유권자들이 크게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20대 대선을 약 2개월 앞둔 가운데 '젠더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대남 유권자의 결집 효과를 노리는 야당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고 나섰지만, 진보 정당을 중심으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시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가부 폐지' 문구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는 예스(yes). 양성평등가족부 설립은 노(no)다. 상세한 제도 개선 내용은 추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젠더 정책에 대한 윤 후보의 입장은 최근 극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 앞서 윤 후보는 당내 대선 경선 당시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양성평등가족부를 신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등 이른바 '페미니스트 인사'들을 전격 영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로 인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일 국회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와 '극적인 화해'를 성사한 뒤로는 다시 한번 "여가부 폐지" 공약을 거론하고 나선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윤 후보가 여가부 폐지 '한줄 공약'을 발표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문구를 올렸다. 윤 후보의 글처럼 별다른 부연은 달지 않았다. 윤 후보가 공약을 공개하는 방식을 풍자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또한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윤 후보는) 이준석 대표가 낸 연습문제 답변을 쓰고 계신 것인가. 아니면 남자 초과커뮤니티를 향해 반성문 쓰시는 건가"라며 "대선 후보치고는 참 비루하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젠더 평등 관련 주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했다.
이 결정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페미니스트 방송 출연을 철회하라"며 비판했는데, 이 후보는 이날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며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런 댓글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가능한 들어야 한다. 모두가 국민이기 때문에 펨코, 디시인사이드, 그 외 여러 사이트 의견도 듣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대 대선 투표일까지 단 58일을 남겨둔 가운데, 20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려는 후보들의 구애가 치열해지면서 '젠더 갈등'도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0대 사이에서 젠더 갈등이 불거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19~34세 청년 65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년 남성 중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변했고, 여성 중 74.6%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우리 사회는 남녀 평등하다"라고 인식하는 이들은 남성(29.7%), 여성(17.7%) 모두 소수에 불과했다.
양성 평등에 대한 남녀 두 집단의 시각 차이가 극명히 갈리다 보니, 대선 후보들을 향해 '젠더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한 누리꾼은 이 후보를 향해 "민주당이 그동안 여성 우대 정책에 매몰돼 있었다"며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라. 그렇게만 하면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동네방네 이재명 찍었다고 자랑하고 다니겠다"고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이 편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함께 읽어 보시지요"라고 쓴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20대 남성의 요구를 청취하는 일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 유권자들은 이 후보의 글에 대해 "여성 청년은 청년이 아닌가", "남성 표를 얻겠다고 젠더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거냐" 등 비판을 쏟아냈다.
윤 후보가 지난 7일 쓴 '여가부 폐지' 문구에 대해서도 여성 유권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들은 "이대남을 끌어안으려다 이대녀를 다 잃을 것", "여가부 폐지가 어떻게 성평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라는 거냐" 등 질타했다.
전문가는 사회적 차별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여가부를 폐지함으로써 젠더 갈등을 완화하는 정책은 효과적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차별과 폭력은 모든 집단에 동등하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약자 집단에 더 큰 충격으로 이어진다"라며 "오랜 시간 사회 주도적인 집단이었던 남성과 여성이 받는 차별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언젠가는 (여가부 같은 여성 전담 부처가) 없어지는 게 더 긍정적인 사회이겠지만, 그건 여성 차별이 사라졌을 때의 이야기다"라며 "직장, 치안은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여성 차별이 남아있는 지금은 여가부를 없앨 만한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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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여성과 청소년을 전담하는 정부 부처는 거의 모든 선진국이 다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는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 예산이 협소한 편"이라며 "여가부가 젠더 갈등을 악화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작은 예산 규모 때문에 여성과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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