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선임기자] 2015년 7월 일본은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 시대의 산업유산 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징용 같은 역사도 함께 알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사토 구니 주(駐)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의 징용정책 시행 사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속은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과거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학살, 강간, 강제징용을 일삼았던 일본이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규슈 지역 유산 중 다카시마·하시마 탄광,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에서는 태평양전쟁 기간 중 조선인 약 3만명, 중국인 약 4000명, 연합국 포로 약 4000명이 강제 동원돼 노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시마는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나갈 수 없어 ‘감옥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이 지난해 6월 공개한 도쿄도 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에 희생자의 사진이나 증언은 없고 "민족차별도 강제노동도 본 적 없다"는 거짓 증언에다 일본 근대화 과정을 자화자찬하는 내용만 있었다.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 노역한 많은 조선인 등 희생자를 기리기보다 일본 노동자와 다른 지역 노동자들 모두 동일하게 가혹한 환경 속에 처해 있었다고 강변했다.
이는 같은 전범국인 독일의 태도와 대비된다. 독일 서북부 졸페라인 탄광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전쟁포로를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고 사실 그대로 알리고 있다. 일본도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힌 뒤 사죄할 일은 사죄하고 배상할 일은 배상해야 마땅하다.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니 등재 취소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조약이행을 위한 작업지침’을 보면 지정 취소는 "등록 결정된 자산의 특징이 상실될 정도로 망가진 경우"나 유산의 물리적 보호와 관련해 "유네스코 측이 요구한 개선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 한정된다. ‘역사왜곡’이라는 이유로 제3국이 지정 취소를 요구한 전례가 없다. 게다가 지정 취소를 위해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실질적인 대항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애초 지난해 6월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된 제44차 WHC가 오는 16~31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에서 온라인으로 열린다. WHC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국제기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서한에 따르면 WHC는 "이 문제를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며 "제44차 WHC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고유가 지원금 받아도 1인당 30만원 또 준다…18일...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이번 WHC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지정 취소’ 노력 대신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치밀하고도 적극적으로 여론몰이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