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원더플 라이프'/사진제공=안다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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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모든 기억을 잊고, 단 하나 순간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언제를 고르시겠습니까?"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역 '림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이들이 천국에 가기 전 7일 동안 머무는 중간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죽은 이들은 이곳의 직원들로부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선정된 기억은 직원들이 짧은 영화로 만들고, 죽은 이들은 추억이 재현된 영상을 보면서 천국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 이곳의 체계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종이 울리고 카메라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를 비춥니다. 이제 막 이승을 떠난 사람들은 이 입구를 통해 림보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죠. 그리고 사흘 안에 자신의 기억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이는 이곳에서 천국의 세계로 가기 전 꼭 거쳐야 하는 절차입니다.


이 질문을 듣고 선뜻 대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머뭇거리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아예 대답을 않고 창밖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이들도 있지요. 아마도 이 질문은 '나는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근원적인 물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됐든, 기억을 하나 고르는 일은 이 세계의 규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나온 삶을 조금씩 더듬어갑니다. 처음엔 곤란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은 막상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자 마치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터놓습니다.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서 귀 청소를 받았을 때의 살냄새, 어린 시절 대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고 놀던 기억,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췄던 때의 설렘 등 이들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불명확하지만, 떠올린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살아온 인생이 각자 다르듯 이들의 기억도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영화 '원더플 라이프'/사진제공=안다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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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기억을 쉽게 고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50대 남성 야마모토는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싶진 않네요"라며 기억을 상기하는 것을 회피하고, 70대 노인 와타나베는 단 하나의 기억만 골라야 한다는 이곳의 규칙에 의문을 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고만고만한 삶이었다고 돌아본 와타나베에게 특별한 하나의 기억을 택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과제였죠. 두 사람은 끝에선 기억을 고르게 되지만, 선택을 결심하기까지 자신의 삶에 관해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20대인 이세야는 림보의 규칙에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청년입니다. 그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곤 직원들에게 "이곳의 체계를 다시 생각해보지 그래요?"라고 반문합니다.


이세야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서 기억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는 뜻일까요. 사실 림보의 직원들 또한 마지막까지 기억을 선택하지 않아 중간 세계에 남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모치즈키와 시오리 역시 끝내 기억을 선택하지 못해 림보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영화 '원더플 라이프'/사진제공=안다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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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죽은 이들의 사연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기록하는 형식으로 촬영했습니다. 관객은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뷰 진행자의 위치가 되어서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들이 어떤 기억을 선택하느냐 보다,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요. 기억을 떠올리는 이 과정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원더플 라이프'의 주제 중 하나는 '사람에게 추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다만, 이 물음에는 '사람은 망각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는 림보의 규칙에는 '이 외의 모든 기억은 잊게 된다'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사람의 기억은 결국엔 잊혀지게 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명한 기억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는 것이 사람의 기억이니까요.


그렇다면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행위는 '잊혀지는 것을 붙잡으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이 무엇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지탱하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과정이자, 나를 나로 있게 만드는 어떤 것을 떠올리는 과정입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기억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림보의 직원들은 죽은 이들이 선정한 기억을 정성 들여 재현하고 영상으로 보관하는데, 이는 곧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즉 영화는 망각되는 기억을 현재로 이끌어 와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매체라는 것입니다.


처음의 물음은 이렇게 다시 바뀔 수 있습니다. '망각하는 존재에게 추억을 떠올리는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억의 조각을 주워 모아 관객에게 제시하고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역할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원더플 라이프'/사진제공=안다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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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끝에서 죽은 이들은 기억을 재현한 영상을 보고,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만을 갖고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모치즈키 또한 기억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생전에 약혼했던 여성 교코가 죽은 뒤 자신과 함께했던 순간을 단 하나의 기억으로 선택했다는 사실 알게 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모치즈키는 교코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순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모치즈키의 기억을 재현하는 영상을 촬영합니다. 모치즈키는 재현 세트장 벤치에 앉아서 자신을 카메라로 찍는 직원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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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영상에는 물론 정면을 응시하는 모치즈키의 모습만 담겨있겠지요. 그렇지만 그의 눈은 프레임 밖에 있는 무엇을, 분명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국에 간 그는 림보에서의 일을 모두 잊게 될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본 장면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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