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키코 '보상'의 씁쓸한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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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키코 문제를) 대승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고객과의 신뢰 형성을 통해 금융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윤석헌 금융감독원장, 2019년 12월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


"금융사가 금감원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검사ㆍ제재 강화로 압박이 커지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습니까."(시중은행 관계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 기업에 대한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 금감원과 은행들의 시각에는 이처럼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키코 배상의 절차적 본질은 법률상 배상 책임의 여부다. 사기 등 혐의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이미 이뤄졌고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도 완료돼 배상의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이 15일 이사회에서 배상이 아닌 '보상'을 결정한 건 이 같은 모순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보상 형식으로 절충한 결과다. 앞서 한국씨티은행도 같은 맥락에서 보상을 결정했다. 이르면 다음 달 중 다른 은행들도 보상안을 마련해 제시할 것으로 금감원과 은행권은 전망한다.

금감원은 윤석헌 원장의 소신에 따라 키코 배상 문제를 도마에 올렸고, 지난해 마련한 배상 권고안이 먹히질 않자 은행들의 '자율적 배상 논의'를 명분으로 하는 협의체를 가동했다. 미증유의 초법적ㆍ사회적 보상 결정이 도출된 배경이다.


문제는 '자율'이라는 수사(修辭)의 이면이다. 다수의 은행권 인사는 '윤석헌 체제'에서 갈수록 강해지는 압박에 떠밀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윤 원장 취임 뒤 종합검사가 부활하고 금융사 임원들이 줄줄이 중징계를 받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금감원의 '시그널'이 강력해졌다"면서 "금감원의 주도로 만들어진 협의체부터가 권고안 불수용의 후폭풍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의 검사ㆍ제재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서 "금감원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눈치를 안 보겠느냐"고 토로했다.


물론 키코 사태의 1차 책임은 잘못된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에 있다. 이번 보상이 소비자보호 및 피해 배상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는 목소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감원이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소비자보호라는 가치를 앞세워 사후 제재나 배상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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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한 금감원 감사에 왜 나서겠는가. 소비자보호를 위한 다양한 시도에 뒷말이 따라다니는 건 금감원에 대한 금융권의 신뢰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윤 원장이 누누이 강조한 신뢰의 회복은 금융사들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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