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신냉전시대 재거론되는 '팍스 아토미카'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국과 중국·러시아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과거 냉전기 미국과 구소련이 벌였던 핵개발 경쟁이 다시금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핵전력에 대비해 신형 핵무기 개발과 현대화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지난 16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의 세계 최초 핵실험이었던 1945년 트리니티 핵실험 75주년 기념성명까지 내면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핵무기는 2차대전 종식에 기여했고 여전히 우리 국방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며 "미국의 핵억제력에 의존하는 동맹국들의 안보에도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발언했죠.
이처럼 핵전력이 안보와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똑같이 같고 있습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에서 미국 및 서방간의 갈등으로 인한 3차대전 발발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상호 파괴에 대한 공포가 주요 군사강국들의 과격한 행동을 억제하고 서로를 존중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주요 군사 강국들 사이에 전략적 균형이 조성돼있어 2차대전이후 전 세계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 답했죠. 핵무기를 통한 세력균형이 세계 평화를 유지시킬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신형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처럼 핵무기를 통한 상호 파괴에 대한 공포,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평화를 유지한다는 믿음을 핵평화론,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란 용어에 빗대 '팍스 아토미카(Pax atomica)'라 부릅니다. 과거 1960년대 냉전시기 언급되던 이 핵평화론이 새삼 다시 언급되기 시작한 셈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2차대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실전에 투입됐던 핵무기 역시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45년 8월, 일제가 본토 주민 1억명이 모두 죽을때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과 연합군은 일본 본토로 포위, 섬멸할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실행될 경우 수천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로 일제가 본토 항전을 하지 않고 항복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명이 희생됐다는 것이죠.
핵을 통한 전략적 균형과 평화는 냉전기인 1960년대에는 국제외교 무대에 실제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964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이끌던 프랑스 행정부는 구소련의 핵위협에 대항해 핵개발에 나서면서 이른바 비례억지전략이라는 새로운 핵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이미 당시 1만기 가까이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소련처럼 핵을 동등한 수준으로 보유할 수는 없지만, 적의 수도나 대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는 소량의 핵무기만 있더라도 적군이 먼저 전쟁을 벌이기 어렵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후 북한이나 이란같은 나라들의 핵개발에도 이 비례억지전략이 주요 명분으로 작용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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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국의 과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전력 강화 정책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 직후 미국 과학자 70여명이 사이언스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핵실험 재개 움직임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미 핵을 보유한 국가들끼리 상호 핵억제력 강화를 위해 핵전력을 강화하는건 핵전쟁 위협성만 높일 뿐, 의미가 없는 일이고 오히려 북한이나 파키스탄, 인도 같은 나라들에 핵개발 명분만 주는 일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죠. 미국 내 반중, 반러정서와 핵군비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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