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 지면 좌담회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첨단산업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벌어질 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국내 유턴을 촉진하고 해외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데 국정 역량을 쏟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높아진 'K-방역' 프리미엄을 통해 기업 리쇼어링(reshoring·본국 회귀)과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늘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높은 법인세, 뻣뻣한 노동 유연성, 엄격한 주52시간 제도, 중국과 동남아보다 매력이 낮은 인건비 등 문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막대한 설비 이전 비용을 치르고 굳이 한국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경제는 '갈림길에 놓인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이란 주제로 GVC, 산업구조 개편 정책 방향에 관한 통상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면 좌담회'를 열게 됐다.

[참석자(가나다순)]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

AD
원본보기 아이콘


글로벌 생산기지의 脫중국화 가속
다국적·국내 기업 활용 역내 아웃소싱 '온쇼어링' 주목
USMCA·CPTPP 등 다자 FTA 맺어 혜택 누려야
K-방역 위상 이용 세계 공급망 도약 기회로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가 맞이할 GVC 변화의 주요 특징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강내영=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해외 중간재 수요 감소 및 생산망 단절 등이 나타나고 있어 GVC 정체는 향후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국경을 봉쇄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redesign)이 불가피해져 글로벌 생산기지의 탈(脫)중국화가 가속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넘어 다국적 기업 리쇼어링의 중요성이 커졌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제조업의 스마트화', 제조업의 서비스화 등도 확대될 것이다.

▲최원목= 기업들은 자국 혹은 특별한 관계를 맺은 국가의 소재·부품·장비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GVC를 근본적으로 다시 형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중국 위주의 투자 및 GVC 수급 정책을 수정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많은 국가와 기업이 투자 및 수급망 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의료물자 공급의 자립화를 위한 의료산업의 유턴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 관행화될 것이다.

▲허윤=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을 활용한 '온쇼어링(onshoring·역내 아웃소싱)'이 이미 주목받고 있다. 온쇼어링은 국내외 기업이 한국의 영토 안에서 아웃소싱을 하는 개념이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역외 아웃소싱)'을 온쇼어링으로 바꾸는 것이 리쇼어링이다. 오프쇼어링을 하더라도 본국과 먼 곳에서 생산하거나 부품을 조달하던 '파쇼어링(farshoring·원거리 아웃소싱)'보다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근거리 아웃소싱)'으로 바뀌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 정부나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허윤= 한국 기업이 공급망을 리쇼어링하려면 일본이나 미국 같은 파격적인 조건의 인센티브가 있어야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숨 막히는 규제, 높은 법인세와 적대적인 노사 문화 등으로는 외국 기업 유치는 물론 국내 기업 유치나 본국 재유치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최원목= 장기적으로 각국의 인위적인 유인책 때문에 국제 GVC 분업 체제의 효율성이 왜곡되고 그 비용은 세계의 모든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편의를 고려한 국가 간 GVC 블록을 형성해주거나 기존 블록에 참여해 새로운 GVC 안전판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안전판이란 높은 수준의 다자 FTA를 맺어 가입국의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를 역내에서 원활히 수급할 수 있게 하고, 완제품 역내 교역을 할 때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우리나라와 핵심 가치를 공유하며 파트너십 관계를 안정적으로 형성해나갈 수 있는 국가들과 경제공동체 관계를 강화하고 이들 국가 간 GVC 라인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북미 지역 3국 간의 경제공동체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우리가 가입할 수도 있고, 일본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해 CPTPP의 GVC 공급망 혜택을 단번에 누릴 수도 있다.

▲강내영= 핵심 공정을 중심으로 다국적 기업의 리쇼어링을 지원함으로써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선 2016년부터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리쇼어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국내 생산→수출 증가·수입 감소→설비투자 및 소득 증대→일자리 창출 및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법인세 감면,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 추진한 결과 최근 5년(2014~2018)간 매년 482개사가 본국으로 유턴했다. 독일 제조기업들은 기술 혁신 수준이 높은 제조기업군에서 그렇지 않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10배 높은 리쇼어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대(對)중국 관계에서 어떤 전략과 자세를 취해야 하나. 탈중국에 속도를 내는 것이 맞는다고 보나.

▲허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았다. 미·중 관계도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커서 중국의 국가 리스크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 리스크를 헤지(위험 회피)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탈중국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환경이나 노동 문제로 탈중국하는 기업에 일종의 보복성 징벌을 가할지도 모른다. 탈중국을 결심했다면 수년에 걸쳐 점진적이면서 세심한 출구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강내영= 고위(高位) 기술 중간재와 자본재, 고부가가치 소비재와 서비스 수출을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 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홍색 공급망을 바탕으로 범용 중간재의 자국산 비중을 높임으로써 중국의 수입 구조가 범용 중간재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중간재와 자본재를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이 조립 생산에서 중국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범용 중간재 수출을 중국에서 아세안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인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탈중국 논의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산업 구조 및 가치사슬이 중국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고 여전히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내수시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거대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중국이 갖고 있는 리스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대기업 유턴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써야 하나.

▲허윤= 대기업 유턴 정책은 지금과 같은 정책 기조 아래에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정책의 초점을 몸집이 가벼운 중소·중견기업에 맞춰야 그나마 유턴 유도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이다. 특별한 추가 지원보다는 현행 수도권 총량 규제나 환경 규제 등 각종 규제 완화, 주 52시간 근로제나 최저임금 적용의 한시적 유예 혹은 법인세 감면 혜택 등이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최원목=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의 기업 환경을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기 위해선 보조금 등의 직접적 인센티브가 효과적이다. 대기업의 유턴을 위해선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의 친기업 정책과 국내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인교= 유턴 결정은 기업들이 하는 것이고 정부는 유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은 여러 생산지의 여건과 단가를 견줘 유턴 혹은 생산기지 구축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몇 가지 조치만으로 기업들이 국내로 회귀할 것으로 낙관해선 안 된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노동 규제를 하면서 국내에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생산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AD

-K방역 덕분에 한국이 세계의 공급망이 될 수 있다는 의견, 리쇼어링과 함께 현지 소비시장에 생산 거점을 두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 차세대 첨단 기술은 리쇼어링하고 그 외 기술은 소비지 생산 비중을 늘려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기된다.

▲정인교= 차세대 첨단 기술은 보안 등의 이유로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기업들은 소비시장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가 리쇼어링·오프쇼어링 업종을 골라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현 통상 규범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보조금 특정성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지역은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다.

▲최원목= 리쇼어링과 '디쇼어링(deshoring·역외 아웃소싱을 뜻하는 오프쇼어링과 비슷한 개념. '디소싱'이라고도 함)' 정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첨단 기술과 핵심 산업 부문은 리쇼어링을 통해 국내에서 안정적 기반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뤄나가도록 유도하고, 이런 혁신의 결과물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시설 및 인력은 디소싱을 통해 해외시장에 거점을 세우고 현지에서 만들어 파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허윤= 우리 대기업 주력 업종의 리쇼어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수출 기업들은 주요 소비시장에서 '현지완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가져가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 자동차와 전자업종 등은 디쇼어링을 병행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온쇼어링 추진 전략을 활용해 이들 국가에 안전한 공급망을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차선책이 될 것이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