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②] 코로나 걸려 3주간 자리비운 英존슨…초기 안일 대응이 사태 키워
코로나에 끼인 리더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뒷북 대응, 부적절한 처신ㆍ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전 세계 리더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 위기 상황에 바람직하지 않은 대응이 각국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이로 인해 입지가 흔들리는 리더의 행보, 각국의 정치 변화를 예상해봅니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처음으로 코로나19의 정점을 지났다. 우리는 이제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돌아왔다. 주요국 정상 가운데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다시 수장의 자리로 돌아왔다. 업무 복귀 이후 첫 브리핑이 있던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존슨 총리는 영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을 지났다고 밝혔다. 한달간의 업무 공백 후 돌아온 그는 영국 코로나19 위기의 정점을 함께하지는 못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영국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2만6097명으로 집계돼 미국(6만3765명), 이탈리아(2만7967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은 국가가 됐다. 존슨 총리가 퇴원 후 휴식을 취하는 동안 영국의 하루 사망자 수는 1172명(4월 21일)에 달했다. 누적 확진자 수도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 3월 27일 1만4543명에서 지난달 29일 16만5221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 초기에 '악수' 자랑했는데…총리·보건장관·왕세자까지 감염 = 바이러스에는 눈이 없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감염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 수장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존슨 총리를 비롯해 코로나19 사태의 실무 책임자인 맷 행콕 보건부 장관과 영국 왕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존슨 내각의 안일한 초기 대응이 나온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난 3월 3일 기자들과 만난 존슨 총리는 "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어젯밤 코로나19 환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병원에 갔고 그곳에 있는 모두와 악수를 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4일 뒤인 3월 7일에는 임신한 약혼녀 캐리 시먼즈와 럭비 경기를 관람했다. 수장의 행보는 대중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데,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드러난 지점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집단면역' 논리를 앞세워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적극적인 코로나19 확산 방지 조치를 도입하지 않았다. 집단면역은 한 인구집단 내에서 특정 감염 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 그 질환에 대한 전체 인구집단의 저항력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3월 13일 패트릭 발란스 정부 최고 과학보좌관은 영국 인구의 60%가 코로나19에 감염돼야만 집단면역이 생길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은 이같은 집단면역 확보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감염성이 높고 치사율도 독감과 같은 질병에 비해 높은 코로나19의 특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조치였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감안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지난 3월 3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장려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코로나19 확산 대비 실행계획을 세웠지만 적극적인 메시지 전달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그 중심에는 존슨 총리의 행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수장 '빈자리' 드러난 英정부 = 결국 존슨 총리는 위기 상황에서 업무 공백을 만들었다. 지난 3월 27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그는 열흘간 발열 등 증상이 지속되자 지난달 5일 입원했다. 같은 달 12일 퇴원을 한 뒤 27일 업무에 복귀한 점을 감안하면 입원 후 업무 복귀까지 3주 가량 자리를 비운 것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보수당의 압승을 기반으로 강하게 국정을 운영해왔던 그가 코로나19 사태에서 모습을 감췄다.
존슨 총리가 업무 수행이 어려워지면서 영국 정부는 혼란 상황에 놓였다. 도미닉 라브 외무부 장관이 업무 대행을 맡았지만 성문법이 없는 영국에서는 총리 유고 또는 부재시 총리 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등이 담긴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난감했다. 위기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할 사안이 잇따랐지만 최종 결정권자 없어진 것이다. 그 사이 영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크게 늘었고 병원 현장에서는 마스크, 가운 등 보호장구 부족 사태가 이어졌으며 항공업계 등 경제적 손실도 급증했다.
수장 없는 영국 정부 각료들은 내부 갈등을 대중들에게 노출했다. 특히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과 행콕 보건장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안을 놓고 이견을 드러냈다. 영국 정부는 부인했지만 언론을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해제 여부를 놓고 대립한 사실이 속속 전해졌다. 이를 두고 지난달 중순 한 영국 정부 관계자는 외신에 "영국이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 이슈"라면서 존슨 총리가 이번 결정을 내려야한다고 했었다.
결국 존슨 총리는 업무 복귀 첫날인 지난달 27일 업무 공백을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곧바로 "봉쇄조치 완화는 성급하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30일 휴교 중인 학교와 직장이 안전하게 문을 열고 봉쇄조치를 완화할 수 있도록 다음주 중 관련 지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은 지난 3월 23일 이후 슈퍼마켓과 약국 등 필수 영업장을 제외한 모든 가게가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英…마스크 착용 권고할까 = 영국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6주간의 일상 회복 계획을 세우고 지난달 30일 공문을 통해 병원들에 일상적인 수술 업무를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대기해왔던 수술을 우선적으로 하도록 하되 코로나19와 관련해 온라인 상담 대응은 지속해달라고 요청했다. 의료인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는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해달라는 내용도 공문에 포함됐다.
같은 날 영국 정부의 최고 과학자문관인 패트릭 발란스 박사는 코로나19 감염자들의 바이러스 전파력이 떨어지는 한편, 입원 환자와 중증치료병상 환자들도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파율이 1 이하로 떨어져 0.6~0.9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감염자 1인이 감염시키는 2차 감염자수를 의미하는 기초감염재생산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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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총리는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한다면서 이날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뜻을 내놨다. 가디언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위기 이후 국면을 위한 플랜에 이같은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면서 "마스크가 유행병학적인 이유로도 유용하지만 직장으로 돌아가는 국민들이 신뢰를 갖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영국 정부는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감염을 막는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되풀이한 상황이어서 업무에 복귀한 존슨 총리의 결정이 이를 바꿀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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