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우리는 앉아서

자본주의 시대를 배운다.


이 시대에서 돈으로 생명과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문장을 읽을 때

어린 친구가 묻는다.


선생님, 영혼은 어떻게 팔아요?

그는 이제 십 년을 살았으니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작년에 죽은 친구는 이 시간이면 성당에 갔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좋은 곳에 있을 테지. 영혼은


호리병에 훅 담아 팔아요?


손 모양으로 진지하게 입김을 후후 불고는 까르륵 웃는 것이다.


팔 수 있다면 코카콜라 병이어도 괜찮겠지. 이 말을 꺼내면 펩시는 안 되는지 친구는 물을 것이고 진열된 캔에 영혼을 얼마나 함유할지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이 시대에 나의 영혼을 누가 살까.


우리 선생님이었대. 불쌍하다.


그들이 조금씩 나누어 마실지, 아니면 배운 대로 이런 걸 사고팔아서는 안 되는 거야. 순순히 따를지 궁금한 시간을 지나 나의 어린 시절은 8.15콜라를 따고 있다.


언제든 사고팔아서는 안 되는 거야.


이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언제 팔린 건지 모르면서 떠드는 일요일. 이 시대에서 아직 죽어 보지도 못했으면서. 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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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일요일/김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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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자본주의와 무관하다고들 여긴다. 명백한 오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예술은 상품이 되지 않는 한 유통될 가능성마저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유통시킨다. 추억도 사랑도 영혼도 예외는 없다. 아니 자본주의는 영혼과 같은 텅 빈 혹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관념들을 팬시상품처럼 실체화해 우리 앞에 진열한다. 그러니 당장 떠들 수 있는 항쟁의 신조는 진정한 예술이라면 상품이 되길 결연히 거부하자는 것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 동어반복은 다시 말하건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실은 자본주의 체제에 예술이 구걸해 얻은 생존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다만 더 비참해지거나 소멸하거나 견딜밖에.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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