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혐오 바이러스, 그리고 총선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물이 넉넉하면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가물었을 때, 비로소 바닥의 높낮이, 지형과 질감이 드러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삶의 조건들이 모두 무너져내렸을 때, 인간의 본모습을 잔인하게 직시토록 한다. 생존과 욕망만이 불덩이처럼 활보하고, 도덕이나 이타 혹은 사랑이라는 단어는 거꾸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문명의 삶은 적당한 햇살과 먹거리가 보장되는 전제 아래에서만 성립할 따름이다.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비 스트로스는 증여, 누군가에 무언가를 주는 행위의 밑바닥에 '부채감'이 있다고 봤다. 쉽게 말해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나도 보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한 번 얻어먹으면 다음엔 내가 내야 한다고 기억해놓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증여는 부채감을 낳고 반복되는 교환으로 이어진다. 여느 동호회에서 회장이 회식비를 내는 것은 권위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타적 행위도 이기적 본심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어서 씁쓸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혐오라는 이슈가 불거졌다.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나의 안위를 위협하는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가 배제와 격리를 넘어 증오로까지 넘쳐흘러버리는 식이다.
너무 어두운가. 물론 세상과 인간을 하나의 키워드로 이해하는 것은 우둔한 짓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기도 하다.
한 임신한 여인이 죽어가는 남편에게 다가간다. 의사가 다급하게 외친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그는 이제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여인은 듣지 않는다. 울면서 손을 잡고 남편에게 입을 맞춘다. 남편은 소방대원이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담긴 내용이다.
안전은 가장 귀한 가치다. 전염병이 퍼졌을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격리 조치를 하는 지가 안전의 관건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혐오의 바이러스가 무시로 솟아오르는 것 또한 경계해야할 일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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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정치의 계절이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와 가장 쉽게 짝을 이루는 단어 중 하나이고, 이는 정치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증오와 배격으로는 나아지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민주주의와 참정권은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 축복이기도 하다. 4월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증오로 타오르는 정치를 조금이라도 식혀줄만한 우리의 선택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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